지난 2월 부산 4년제 일반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한 주소현(25)씨는 한 달 만인 3월 다시 ‘22학번’이 됐다. 전문대인 청암대에 다시 입학하면서다. 새 전공은 안경광학. 주씨가 일반대를 나오고도 전문대로 ‘유턴(U-Turn)’한 이유는 취업 때문이다. 작년 졸업을 앞두고 의류회사 해외 영업직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점도 높고 무역영어 1급, 베트남어 자격증 등 ‘스펙’도 남 못지않았지만 채용 시장 벽은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 사태로 이런 추세가 더 짙어지자 주씨는 과감하게 유턴을 결심했다. 주씨는 “실무 경험이 있어야 그나마 취업에 희망이 생기는데 인턴 자리 하나 얻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면서 “안경사 면허를 취득한 뒤 베트남어 실력을 활용해 동남아 안경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씨처럼 일반대를 중퇴하거나 졸업하고 다시 전문대에 입학하는 이른바 유턴 입학생이 코로나 유행을 기점으로 큰 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문대 입시에서 ‘유턴’ 입학(대학졸업자) 전형에 응시한 지원자는 1만4071명으로, 2020년(1만268명)보다 1.4배 늘었다. 실제 입학생 수도 2년 새 1571명에서 1768명으로 증가했다.
취업난이 장기화하고 코로나까지 덮치면서 일반대를 마쳐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자, 실용 기술을 배우거나 전문 자격증을 따 취업 한파를 돌파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올 ‘유턴’ 입학자 중 절반(49.5%·876명)은 간호학과에 둥지를 틀었고, 다음은 물리치료과 4.4%(77명)였다. 사회복지, 협동조합경영(농협대), 연기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대졸 취업률은 65.1%로 2011년 집계한 이래 가장 낮았다. 일반대 61.0%, 전문대 68.7%로, 전년(일반대 63.3%·전문대 70.9%)보다 둘 다 하락했지만 일반대 취업률이 더 크게 떨어져 최근 5년 새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실제 기업 신규 채용이 위축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매년 벌이는 조사에서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거나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2020년 74.2%, 작년 67.8%에 달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 사이 공기업 정규직 신규 채용이 절반(47.3%)으로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오병진 전문대협의회 입학지원실장은 “최근 10년간 유턴 입학생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코로나가 본격 입시에 영향을 미친 작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장학금 등 혜택이 있는 대졸자 특별 전형 외에 일반 전형으로 들어온 사례까지 합하면 실제 유턴 입학생은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문대협의회는 본다. 25세 이상 성인 입학생이 늘고 있는 게 근거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전문대 전체 입학생 가운데 2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0.0%(1만9888명)에서 2020년 12.1%(2만2762명), 2021년 16.3%(2만7215명)으로 증가 추세다. 전체 입학 정원이 매년 줄어드는데도 성인 입학생은 꾸준히 느는 것이다.
학령 인구 급감으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은 늦깎이 신입생을 반긴다. 지방의 한 전문대 입학 담당자는 “유턴 입학생이나 만학도는 대부분 목표 의식이 확고하고 학구열도 높아서 자격증 스터디를 주도하는 등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유턴 입학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대졸 취업난과 학력 인플레이션의 한 단면이라는 얘기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미 일반대를 다니며 등록금과 시간을 들인 후에 다시 직업 교육을 받기 위해 비용을 치르는 학생이 많아졌다는 뜻”이라며 “초·중등 단계 진로·진학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