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일을 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남성이 육아와 집안일을 덜 할수록 출산율은 낮았다. 한국은 남성 육아 분담률이 일본·폴란드와 함께 낮은 3국 중 하나였고 출산율은 가장 낮았다. 저(低)출산을 극복하려면 남성이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결과는 미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마티아스 돕케 교수 연구진이 지난달 전미경제연구소(NBER)를 통해 공개한 ‘출산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 보고서에 나타난 내용이다. 돕케 연구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중심으로 40여 국 여성 경제 활동 참여율, 남성 육아 분담률 등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러자 여성 경제 활동이 활발한 나라에서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여성이 일터로 많이 나갈수록 아이를 덜 낳으려 한다는 과거 통념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면서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은 직업과 가족(자녀)을 모두 갖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 수준도 거의 무관했다. 고학력이라고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는 지났다.

반면 남성이 육아와 집안일을 덜 하는 나라에서 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나타났다. 남성의 가사·육아 기여도가 높은 스웨덴·아이슬란드·노르웨이·핀란드·미국 등 상위 5국은 모두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1.8명을 넘었지만, 기여도 낮은 하위 5국은 1.5명 미만이었다. 체코, 일본, 한국,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이 여기에 속했다. 이 보고서에 쓰인 자료는 2005~2015년 수치로 한국은 그 뒤로도 출산율이 더 떨어져 2019년 0.92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명 아래로 추락했고, 작년에는 0.81명을 기록했다. 한국은 남성 가사·육아 기여도는 조사 대상 중 셋째로 낮고, 출산율은 꼴찌였다. 연구팀은 “남성이 육아를 거의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둘째 아이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첫째를 낳고 ‘독박 육아’를 겪은 여성일수록 둘째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해 일본 니혼게자이신문이 OECD 자료를 인용해 작성한 기사에서도 이런 경향은 확인된 바 있다. 출산율이 높은 벨기에·프랑스·노르웨이 등에서는 남성이 가사에 많이 참여한다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반면에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두 나라, 한국과 일본에선 남녀가 집안일에 쓰는 시간이 크게 차이 났다.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집안일을 4.43배, 일본은 4.76배 더 많이 하는 걸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21 양성평등 실태조사’에서도 여성의 ‘독박 육아’ 현실이 드러났다.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집에서 여성이 평일 돌봄에 쓰는 시간은 3.7시간으로 남성(1.2시간)의 세 배가 넘었다. 맞벌이 가정에서도 돌봄 시간은 여성(1.4시간)이 남성(0.7시간)의 두 배였다. ‘아내가 주로 가사·돌봄을 부담한다’는 응답은 68.9%에 달했고 맞벌이 가정에서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가사와 돌봄을 한다’는 비율이 60%를 웃돌았다. 5년에 한 번 하는 이 조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은 2016년 53.8%에서 작년 17.4%로 나아지긴 했지만 인식만 좋아졌을 뿐 현실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돕케 연구팀은 여성 경력 단절을 막고 일과 가정 목표를 양립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으로 육아휴직 활성화, 남성 육아 참여 확대, 육아친화적인 사회 분위기 마련, (퇴직 후 재취업이 쉽도록) 노동 시장 유연화 등을 꼽았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까지 전통적인 가족 규범 등 때문에 여성에게 육아 부담이 더 많이 지워지기 때문에 출산은 여성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부 육아휴직 기간 중 일부를 아빠가 쓰도록 강제하는 북유럽식 ‘아빠 할당제’를 도입해 남성 육아 참여를 높이고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다는 단초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전략 TF(태스크포스)는 2일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대비한 인구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에서 육아휴직과 배우자 출산 휴가 확대, 임신과 출산 지원 시스템 혁신 등을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