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전 교육부장관은 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좌파·진보 세력이 교육 권력을 장악한 이후 절차적 정당성이나 국민 공감대 형성 없이 즉흥적이고 포퓰리즘식으로 교육 정책이 결정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분열로 자멸하면서 교육감 자리를 진보 세력에 내줬던 보수 진영이 올해 선거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교육감 선거는 후보자의 정책·자질보다 진영의 후보 단일화 변수가 크게 작용하며 당락이 결정되곤 했다. 보수 진영은 분열로 자멸하면서 단일화 깃발 아래 똘똘 뭉친 좌파·진보 세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좌파·진보 교육감은 2014년 선거 때 전국 17명 시·도 교육감 중 13명이었고, 2018년 선거에서는 14명으로 더 늘었다. 정권은 대통령 선거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왔지만 지난 8년 교육 권력을 잡아온 좌파·진보 진영에는 사실상 선거를 통한 견제가 없었던 셈이다.

다음 달 1일로 다가온 교육감 선거도 ‘단일화 무산은 곧 필패’라는 공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면은 보수 진영에 유리하지 않다. 문용린 전 교육부장관을 인터뷰한 7일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이주호 예비후보가 중도·보수 진영 세 후보(박선영·조영달·조전혁)에게 단일화를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하고 난 다음 날이었다. 문 전 장관은 “지난 8년간 절차적 정당성이나 국민 공감대 형성 없이 즉흥적이고 포퓰리즘식으로 교육 정책이 결정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분열로 자멸하면서 교육감 자리를 내준 보수 진영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같은 잘못을 반복하겠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교육 현장 혼란 일으키고 ‘셀프 칭찬’

―진보 세력이 장악한 교육 권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교육의 본질이 이렇게 퇴보한 적이 없었다. 교육의 기본 이념은 ‘자유’다. 학생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주고 학부모가 자식을 힘껏 뒷받침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좌파 세력은 교육 현장에서 자유가 아니라 규제 도입에 힘썼다. 또,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진보 세력이 그런 헌법 정신을 준수하면서 교육에 충실했다고 보는 견해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념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자유’ 개념도 빼지 않았나.”

―최근 교육부는 5년간 교육 분야 성과 자료집을 발간했다. 자사고 폐지·원격 수업 등 논란이 컸던 정책에 대해서도 ‘셀프 칭찬’ 일색이었는데.

“자사고 정책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평준화 보완책으로 진행돼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 다양성이란 가치는 유지됐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갑자기 평가 방법을 바꿔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에 나섰다. 기존 정책에 역행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법원의 판단으로 교육 당국이 사립학교에 모두 패소했지만, 학생·학부모·학교 그리고 국민에게 큰 상처를 주고 교육 당국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코로나 사태 때 교육부는 원격 수업 준비가 부족했고 방역 패스와 등교 일정 문제를 놓고도 오락가락하며 학생·학부모에게 불편을 끼쳤다. 작년 대입 수능의 출제 오류 소동은 어떤가. 현 정부는 임기 내내 일관성 없이 여론에 편승한 정책으로 교육 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교육 현장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백년대계(百年大計)’여야 할 교육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년소계(一年小計)’도 안 되게 다뤘다. 그런데도 성찰을 하기는커녕 스스로 잘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현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수능 전 과목을 2021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꾸는 등 대입 제도 개편을 추진했다. 반발에 부딪히자 공론화위원회로 공을 넘겼지만 4개월을 끌다 전 과목 절대평가를 백지화하고 2022학년도부터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 부정 의혹이 불거지자 대입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2023년부터 서울 주요 대학 정시 전형 비율을 4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고교학점제는 2022년 시행으로 공약했던 것이지만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연기한다고 2018년 발표했다가 지난해 8월 사실상 2년 앞당겼다.

기초학력 미달 2배, 치솟는 사교육비

―학생들 학력이 떨어지고 사교육비는 치솟았다.

“교육 현장을 장악한 진보 교육감들은 학력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시험도, 숙제도 없는 교육 현장의 변화가 교실에서 ‘학력 경시’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하고, 부족한 학생은 최소한의 기초학력을 갖추도록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중학교 수학이 2017년 7.1%에서 2020년 13.4%로, 고등학교 영어는 같은 기간 4.1%에서 8.6%로 2배가 됐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은 23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조원 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정부는 코로나가 학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라는 입장인데.

“코로나 사태 전부터 이미 학력 저하 문제가 심해지고 있었다. 코로나가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깜깜이 교육을 하는데 아이가 뭐가 부족한지 알 수 있겠나. 코로나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불러왔지만 학생들 학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야말로 중대한 국가적 재앙이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 자녀들이다.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K방역’을 학교에 최대한 활용해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방법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를 어떻게 평가하나.

“전교조는 정치 세력이 됐다. 기득권화됐다. 교장도 전교조 교사 눈치를 본다. 진보 교육감들은 전교조 집단의 이익 보호에 신경을 써왔다. 하지만 전교조가 수요자(학생·학부모)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혁신학교에 대해 학부모들이 그렇게 반대를 해도 밀어붙인다. 학교는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키워주는 곳이다. 전교조의 획일적 평준화가 과연 이 목표에 부합하는가.”

보수, 단일화 없이 교육감 선거 어려워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는 힘을 제대로 못 썼다.

“좌파 진영은 전교조라는 확실한 구심점이 있는 데다 정치 세력화해서 선거를 치를 줄 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그렇지 않다. 단일화를 주도할 조직과 노하우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보수 진영은 과거 교육감 선거 때 스스로 분열하면서 진보 세력에 자리를 내줬다. 그 결과는 어떤가. 교육에 대한 학부모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학력 저하·격차 문제로 학생·학부모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보수 후보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때 서울시교육감 자리를 놓고 맞붙었던 조희연 당선인과 고승덕 후보, 문용린 교육감(왼쪽부터)이 6월 2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뉴시스

조선일보·TV조선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수도권 교육감 선거 여론조사 결과 서울에서는 진보 성향의 조희연 현 교육감이 중도·보수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오차 범위 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육감이 3선 도전을 공식 선언한 가운데, 중도·보수 진영에서는 본 후보 등록 마감을 닷새 앞둔 8일까지도 단일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분열 양상으로는 보수 진영의 승산이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01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보수 진영에서 출마한 박선영(36.2%)·조영달(17.3%)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53.5%에 달하지만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나선 조 교육감(46.6%)에게 졌다. 2014년 선거에서도 조 교육감은 39.1%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보수 표가 문용린(30.7%)·고승덕(24.3%) 후보로 갈리면서 승리했다.

―이번엔 보수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보수가 싸우다 같이 죽었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후보자들은 ‘죽어야 살고 져야 이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보수가 이기는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 현장이 황폐해지고 학생·학부모가 4년 동안 더 피해를 입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할 일이 많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념 편향적 교육의 문제를 바로잡고 학생들의 떨어진 학력도 끌어올려야 한다. 단일화의 필요성은 후보들도 잘 알고 있다. 단일화를 위한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새 정부가 교육 정책 수립 때 우선순위에 둘 것은.

“윤석열 당선인은 기업인들이 마음껏 돈을 벌 수 있게 하겠다고 했는데, 학교에서도 최대한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게 하면 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학부모들이 힘 닿는 대로 자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 당국이 할 일은 경제적 여력이 안 되는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다. 다양한 인재 양성의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진보 교육 권력이 들어선 이후 사학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가 모든 교육을 책임질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사학 비중이 높다. 그동안 사학은 다양한 건학 이념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왔다. 국·공립학교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사학에서 해결하는 공조 체제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교육의 탈정치화도 시급하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교육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이 정치 이념화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갖춰야 한다.”

☞문용린

1947년 중국 만주 출생으로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교육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서울대 연구과학소장, 청소년 폭력예방재단 이사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 매수죄로 물러나면서 2012년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교육감으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