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한국유아교육학회와 전국유치원교사 노조 등 44개 교육·시민 단체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정문 맞은편에 모여 만 5세 초등학교 조기입학 학제개편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장련성 기자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6세에서 만 5세로 한 살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뒤로 반대 여론이 거세다. 특히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을 교육부가 충분한 설명 없이 느닷없이 들고 나온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유아 담당 기관이 어린이집·유치원으로 나뉘어 있고 일찍부터 소득에 따라 사교육 격차가 큰 상황에서 국가가 일찍 개입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옳은 방향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교육부가 이런 정책을 발표하면서 충분히 검토해 근거를 대며 설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원생을 빼앗기게 된 유치원·어린이집 연합회가 포함된 교육·시민단체 44곳은 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이 지난달 30일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받고 있는 온라인 서명이 사흘 만에 14만명을 넘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은 “교육 현장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학제 개편안을 어떻게 교원단체나 시·도교육감협회와 한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이번 학제 개편안은 윤석열 대통령 선거 공약도 아니었고, 지난 5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도 없었다. 국정과제에는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확대로 출발선 격차 해소’ 대목에 ‘유보(유치원·어린이집) 통합’이 들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7월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임명되고 한 달도 안 돼 교육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정책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유아 부모들 사이에선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처럼 돌봄을 해줄 수 있느냐” “교사들이 일곱 살 교육을 할 준비가 돼있느냐” 등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왜 이 정책을 추진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많다.

초등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은 과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사교육 비용을 줄이고 경제 활동 인구를 늘리는 해결책으로 검토됐지만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진 못했다. 예상되는 효과보다 사회적 혼란이나 비용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교육부 내에서도 “과거 사회적 논란이 커 보류한 정책을 준비 없이 갑자기 (업무보고에) 넣으면 실현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 장관이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수탁을 받아 취학 연령 하향 연구를 했던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조정하는 문제는 아동 발달 단계에 적합한지 따져봐야 하고 입시·취업까지 연결되는 문제인데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하다보니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도 놓치고 있다”며 “과거 정책 연구를 면밀히 살펴보고 정책을 세웠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후폭풍이 거세자 박 장관은 이날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잠재우기에 나섰다. 그는 “지금부터 (입학 연령 하향의 구체적 실현 방법에 대해) 각계각층 의견을 듣고 정책연구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너무 많은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당초 예로 들었던 4년간 단계적으로 취학 연령을 낮추는 방안 대신 “해마다 1개월씩 12년에 걸쳐 입학(연령)을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초등 1~2학년은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보장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신체·인지 능력 발달이 빨라져 만 5세면 학습할 준비가 되고,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수 있어 이점이 크다”면서도 “정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일 대책을 같이 내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