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낮 기자가 찾아간 충북 제천시 소재 세명대학교. 185만㎡(약 56만평) 넘는 캠퍼스 안에 색다른 현수막과 시설이 곳곳에 보였다. 본관 건물에 ‘뭐든지 재미있게! 가능하게! 함께! 재미있는 경험을 누리다’고 적힌 대형플래카드가 먼저 눈에 띄었다.

충북 제천시에 있는 세명대학교 캠퍼스 본관 건물에 붙어있는 대형 현수막. 자유와 자율로 활동하는 14개 학생위원회를 알리고 있다./송의달 기자

중앙도서관에는 ‘쎄쎄쎄 약속 상점’이 있고, 교내 식당 안에는 수 백권의 책들이 서가(書架)에 진열돼 있었다. 학교 기업인 카페 세네트리아 주변엔 ‘오늘은 내가 쏜다!’는 글자와 권동현 총장 사진 입간판을 단 대형 커피차 앞에 학생들이 줄지어 있었다.

◇14개 학생위원회...올 5월 출범

이런 변화를 만든 주인공은 세명대 학생위원회이다. 기존 학생회나 동아리 커뮤니티와 별개로 올해 5월 19일 교내 ‘뭐든지 광장’에서 출범했는데, 14개 위원회에 13명씩 총182명의 학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명대 중앙도서관에 2022년 7월 문을 연 '쎄쎄쎄 약속 상점'. 학교 비용으로 지었지만, 기획·판매·회계·운영은 13명의 학생 위원들로 구성된 '약속하는 위원회'가 100% 책임지고 있다./송의달 기자
권동현(42) 세명대학교 총장은 '젊은 총장, 젊은 학교'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학교 안팎에서 '골든벨'을 수시로 떠뜨리며 학생들과 소통한다. 권 총장이 마련한 무료 커피와 츄러스 등을 받기 위해 2022년 8월2일 낮 학생들이 커피차 앞에 줄 서 있다./송의달 기자
커피차에 '혀니 권동현 오늘은 내가 손다"는 문구와 권동현 세명대 총장의 전면 사진이 붙어 있다./송의달 기자

이병준 기획실장은 “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회의와 토론을 거쳐 학내 주요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위한 결정은 물론 예산집행도 직접 한다. 학교는 관련 비용을 전폭 지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위원들은 소정의 장학금을 받으며 1년 단위로 활동한다. 이들은 30년 동안 굳어진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한 예로 ‘꽃피는 위원회’는 올해 4월 학생들은 물론 제천지역 주민들까지 학내 명물(名物)인 벚꽃을 즐기는 새로운 벚꽃축제를 기획했다. 이들에게 공연을 개방하고 돗자리와 소품까지 빌려줘 지역 시민들도 느긋하게 잔디밭에 앉아 춤과 음악을 즐겼다.

◇고정관념 깬 ‘파격’...직접 예산도 집행

제천시민 박희숙씨(62·식당업)는 “푸드트럭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인생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밤 벚꽃 낭만을 즐기도록 벚꽃나무 아래 야간조명도 설치했다. 학교측은 1000만원 가까운 축제 예산의 수립과 집행을 학생들에 모두 맡기고 비용을 100% 대줬다.

세명대 '춤추는 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제천 지역 어르신들을 상대로 '건강 춤 교실'을 열어 함께 춤추고 있다./SBS방송 캡처

‘춤추는 위원회’는 올 6월 113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제1회 청춘콘서트를 연데 이어 제천시와 연계해 지역 어르신들에게 ‘건강 춤 교실’을 열어 호평받고 있다. ‘생각하는 위원회’는 도서관 뒤편 소나무 숲에 ‘생각하는 존(zone)’을 만들고 26개의 해먹(hammock·기둥 사이나 나무 그늘 같은 곳에 달아매어 침상으로 쓰는 그물)을 설치했다.

이 위원회의 윤유정 위원(23·국제언어문화학부)은 “해먹에 누워 새소리를 듣고 풀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 곳은 세명대학이 전국에 유일하다”며 “매일 학생 40~50명이 이용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세명대학교 '생각하는 위원회'가 중앙도서관 뒤편 소나무 숲에 설치한 해먹(hammock)에서 학생들이 여유롭게 쉬고 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세명대

‘약속하는 위원회’는 ▶부모님께 감사 편지 매주 1회 쓰기 ▶헌혈 ▶하루 1만보 걷기 ▶부모님께 음식 만들어 드리기 ▶공부 등의 약속을 실천하는 모습을 SNS(소셜미디어)에 담아 올리면, 이를 ‘약속 화폐’로 환산해 상품을 준다. ‘부모님께 음식 만들어 드리기’ 한 회당 상품은 짜장라면 10개짜리 1세트이다.

◇학생은 물론 지역 주민, 학부모도 만족

이 위원회의 조윤상(20·경찰학과) 리더는 “설문조사로 학생들이 원하는 상품들을 정했다”며 “학교가 우리를 전적으로 믿고 지난달 도서관에 ‘쎄쎄쎄 약속 상점’을 열어줘 고맙다. 부모님들도 물론 대만족”이라고 했다.

세명대 '약속하는 위원회'가 운영하는 쎄쎄세 약속 상점에서 학생들이 '약속 신청서'를 쓰고 있다. 신청서를 쓴 다음 실제 활동 장면을 SNS에 띄워 인증받으면 원하는 상품을 받아갈 수 있다./송의달 기자

‘벗어나는 위원회’는 매달 3일 오후 3시에 ‘정해진 노선 없이’ 출발하는 고양이 버스를 운영 중이다. ‘이상한 위원회’는 학생식당을 도서관처럼 만드는 공간 변경과 메뉴 콘테스트를 실시했다. ‘용감한 위원회’는 온·오프라인에서 창업몰을 직접 운영한다. 김상구 세명대 총학생회장은 “14개 위원회에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신청해 놀랐다”며 “참여 학생들은 직접 하고 싶은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함으로써 학교 생활에 재미는 물론 사회에 나가서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했다.

세명대 '벗어나는 위원회' 학생들이 운영하는 고양이 버스. 매월 3일 오후 3시, 정해놓은 목적지 없이 만난 학생들은 이 버스를 타고 무조건 떠난다./세명대

세명대학교는 대원여객 창업자로 재선(再選) 국회의원을 지낸 민송(民松) 권영우 선생(1941~2006년)이 1991년 ‘위세광명(爲世光明·세상을 밝게 비춘다)’을 건학 이념으로 세웠다. 1992년 한의과대 설립인가를 받아 4년제 종합대학이 됐고 2007년 취업률 전국 1위에 올랐다.

세명대학교 전경. 왼쪽 아래에 있는 녹색으로 된 건물은 국내 대학 캠퍼스에 있는 가장 긴 골프연습장/세명대

7500여명의 재학생과 교수 및 교직원, 대원교육재단 산하의 대원대학교와 세명고교, 성희여고까지 포함하면 최소 1만명 넘는 인원이 세명대학교 가족들이다. 제천시 지역총생산(GRDP)의 30% 정도가 세명대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있다. 세명대는 제천과 충주에 각각 부속한방병원을 두고 있다.

◇8년째 방학마다 전액 무료 ‘토익’ 과정

천현숙 입학관리본부장은 “우리 학교의 가장 큰 강점은 모든 교수와 교직원, 학생들이 한 마음이 돼 ‘학생 제일주의(第一主義)’를 실천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시작해 올해로 8년째인 ‘토익 완생’ 과정이 대표적이다.

여름과 겨울방학 마다 4주일 동안 250~300명의 희망학생들이 교내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는 식비 포함한 기숙사비와 강의료 등을 전액 지원한다. 천 본부장은 “매년 6억원 정도를 학교가 지원하는데, 이 과정을 마친 학생들의 토익 성적이 평균 200점 이상씩 상승한다”고 말했다.

세명대학교 설립자인 민송 권영우 선생의 유고 자서전. 권영우 선생은 책에서 "교육이란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투자(投自)가 중요하다"며 "나는 그동안 모은 재산은 물론이고 남은 내 생애까지도 모두 교육에 걸겠다는 자세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인터넷 캡처

2020년 코로나 확산으로 대면(對面) 강의가 중단되는 상황에서 세명대는 2021년 1월까지 4차례에 걸쳐 ‘코로나 장학금’을 지급했다. 학교가 부담한 금액은 35억7000여만원이다. 재학생 전원은 1인당 최소 30만원부터 최대 75만원까지 계좌 이체로 장학금을 받았다.

유용식 학생처장은 “학생들의 학업 의욕을 살리고 학부모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총 재학생의 절반 정도인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시설은 일부 언론이 “호화 호텔 같은 기숙사”라고 보도할 만큼 쾌적하다.

세명대학교는 '세명네이처'와 '세네뜨리아' 같은 학교 기업을 운영한다. 사진은 '세명네이처'의 연계교육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의 교육 장면. 한의학과와 바이오제약산업학부, 바이오식품학부 소속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공동 참여한다. '세명네이처'는 '경옥고' 등 홍삼을 주원료로 한 건강증진제품을 생산판매한다./세명대

세명대는 산학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장감 있고 실용적인 교육으로 취업을 활성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국내외 160여개 매장에 3000여명의 직원을 둔 ㈜준오뷰티를 비롯해 코스맥스, 녹십자, 한국콜마, 휴온스 같은 국내외 유명 기업들과 상호업무협약을 맺어 교육·연구와 정보교류·취업 방면에서 협력하고 있다.

금상수 산학협력단장은 “제천시와 절반씩 부담해 ‘도시경영학과’ 석박사 과정을 공동운영하는 한편, 제천시의 4번째 산업단지에 근무할 학생들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주는 내용의 산학협력도 곧 체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천시내 구(舊)도심에 2022년 5월 완공해 들어선 세명대학교 상생(相生) 캠퍼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는 시민들이 즐기는 문화예술공간, 3층부터 5층까지는 학생들이 연구하는 임상실험센터로 쓰고 있다. 대학 캠퍼스와 시민들이 문화예술공간이 결합한 전국 최초 사례이다./송의달 기자


[인터뷰] 권동현 총장, “입학생 전원 골프·수영 가르쳐 졸업시킬 것”

“올 하반기 입학생부터 골프와 수영 두 가지를 모두 배워 졸업하도록 제가 위원장을 맡아 교양교육과정을 전면개편하고 있습니다.”

권동현 세명대학교 총장이 총장 집무실 벽에 붙은 슬로건을 가르키며 밝게 웃고 있다./송의달 기자

올해 3월 세명대학교 제10대 총장에 취임한 권동현(42) 박사의 말이다. 전국 4년제 종합대학교 총장 중 가장 젊은 그는 학교 설립자 민송 권영우 선생의 외동아들이다. 한국외대 독일어과 졸업후 성균관대에서 교육행정학 박사를 받았다.

3월 2일 열린 총장 취임식부터 달랐다. 취임사와 축사 등을 읽고 대학 교기(校旗)를 흔드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총장 스스로 생각하는 학교 비전을 30분 정도 직접 프리젠테이션했다. 그는 학교 홍보동영상에도 출연해 가벼운 춤을 추며 ‘쎄쎄쎄’ 등을 외쳤다. 이달 2일 낮 권동현 총장을 만났다.

- 총장으로서 가장 중시하는 교육 방침은?

“학교는 전문 지식 연마는 기본이고, 인생 예비체험장이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서 ‘재미있고 뿌듯한 경험’을 많이 해 자신감과 노하우를 체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 목표부터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주는 1등 학교(No. 1 for Student Fun Experience-SeMyung)’로 정했다.”

권동현 세명대 총장은 전국 4년제 종합대학교 총장 가운데 가장 젊으면서 혁신을 선도하는 인물로 손꼽힌다./세명대
세명대학교 총장실에 붙어있는 세명대 2022학년도 교육 목표/송의달 기자

- 왜 굳이 ‘재미있는’ 경험’인가?

“학생들이 주제와 프로젝트를 스스로 정해 ‘재미있는 경험’을 해야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고, 몰입을 통해 ‘성장’한다는 3단계 학습이론에 따른 것이다. 학생들이 주인(主人)정신을 갖고 하는 자기주도적(self-motivated) 대학생활은 졸업후 삶과 사회생활도 자기주도적으로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고 확신한다.”

권 총장은 “선친께서 ‘나는 경험대학, 경험학과를 나왔다’며 항상 공부 못지 않게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며 “나는 ’재미(Fun)있는 경험’을 많이 하는 ‘학생 경험 중심 선도(先導) 대학’으로 세명대학교를 개조하고 있다”고 했다.

- 14개 학생위원회 가운데 총장의 개인 사비(私費)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꿈을 가진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밀어주는 위원회’이다. 매년 사비 2000만원을 들여 위원회 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장학금을 지급한다. 단, 선정 기준은 학업 성적이 아니다. 황당해 보여도 꼭 필요하고 상상력 넘치는 꿈을 중시한다.”

◇“수도권 출신이 70%...한의학·바이오 분야 경쟁력”

- 학생들의 지역별 구성은?

“재학생들의 65~70%가 수도권 출신이고, 20%는 제천, 나머지 5~10%는 인근 지역에서 온다. 학교는 서울에서 KTX와 고속버스로 각각 1시간 거리에 있다. 신입생들은 원하면, 시설과 규모가 전국 최상위권인 기숙사에서 모두 생활할 수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세명대 기숙사 모습. 전체 재학생의 절반인 3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이다. 1인실, 2인실, 4인실, 6인실 등으로 다양하다./세명대

- 전국적으로 경쟁력 있다고 자부하는 학과라면?

“인성(人性) 교육에 탁월한 교양학부를 비롯해 한의학과와 간호학과, 경찰학과를 꼽을 수 있다. 화장품학과, 동물바이오헬스학과 같은 바이오 분야를 중점 특성화 학과로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2년제 석사 과정의 정규 저널리즘대학원도 세명대학교에 있다.”

- 내년 입학하는 신입생 모두 골프, 수영을 배울 수 있나?

“그렇다. 대학 캠퍼스 한 가운데 길이 250m 규모의 골프 연습장이 있다. 전국 대학내 골프연습장 중 가장 클 것이다. 올해는 교양선택 골프를 신청한 학생 120명만 이용하는데, 내년부터는 골프를 교양필수로 바꿔 모든 학생이 즐기도록 하겠다. 정문 왼편에 짓는 제천시 국민체육센터에 수영장 시설이 들어서는데, 이에 맞춰 수영도 교양필수로 지정할 방침이다.”

세명대학교 캠퍼스 한 가운데 있는 골프연습장. 길이 250m로 국내 대학내 골프연습장으로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올해 하반기 입학 결정을 내린 신입생부터 골프와 수영을 교양필수과목으로 모두 수강해야 한다./송의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