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업 능력 평가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 때 학력 진단을 소홀히 해 학생들 학력이 떨어졌다고 보고, 앞으로 원하는 학생은 모두 평가를 받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맞춤형 학습 지원을 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AI(인공지능)가 학생마다 어떤 점이 부족한지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스템도 도입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별 밀착 맞춤형 교육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고 기초학력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줄 세우기라는 비판 뒤에 숨어 아이들의 교육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두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윤 대통령 발언은 이날 교육부가 보고한 ‘기초학력 보장 종합 계획’을 접한 뒤 나왔다. 이 계획은 지난 3월 기초학력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처음 마련된 것으로, 내년부터 2027년까지 국가와 시·도 교육청이 책임지고 학생들 기초학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자율평가)’를 단계적으로 확대, 2024년에는 희망하는 모든 초3~고2 학생이 치를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지금은 희망하는 초6·중3·고2만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기초학력 미달’로 판정된 학생은 다시 정밀 진단을 해서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장기적으로는 AI 기초학력 지원 체계를 구축해 진단부터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학습을 지원하는 게 목표다.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모든 초·중·고는 4월 말까지 기초학력이 부족해 지원해야 할 학생을 추려야 한다. 학생을 추릴 때 학교는 교육부가 제공하는 맞춤형 자율평가를 활용해도 되고, 교사가 상담이나 받아쓰기 같은 자체 평가로 정할 수도 있다. 올해부터 컴퓨터로 치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도 도입된다. 자율평가를 칠 수 있는 대상은 현재 초6·중3·고2에서 내년 초5·6, 중3, 고1·2로 넓힌 다음, 2024년엔 초3부터 고2까지 모든 학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자율평가 외에도 다양한 시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AI로 학생 개인마다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예컨대, 학생이 시험을 치면 AI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분석한 뒤 ‘이 문제를 더 풀어보라’고 제시하는 시스템을 모든 학생이 활용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AI 시스템 구축을 포함해 기초학력 보장 정책에 2025년까지 3년간 1조7669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가 이런 종합 계획을 내놓은 건 학생들 학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매년 전국 중3과 고2 학생 3%를 표집(표본 추출)해 치르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국가수준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2017년 대비 2021년 모든 과목에서 2.1~5.7%포인트씩 늘었다. ‘기초학력 미달’은 자기 학년에 배워야 할 내용 가운데 20%를 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다음 학년에 넘어가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 이렇게 학력이 떨어진 데는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이 시험이 경쟁을 부추기고 서열화한다며 경시한 것이 큰 이유로 분석된다. 문 정부는 2017년에 모든 학생이 치르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3%만 표집해 치르는 평가로 바꿨다. 제대로 평가를 치르지 않으니 학교가 학습 부진 학생을 고르기 힘들었고, 발견했더라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계획대로 원하는 학생들이 평가를 다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전교조가 맞춤형 자율평가 확대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부산교육청도 올해 모든 학교에서 맞춤형 자율평가를 보게 하려 했는데, 전교조가 “직권남용으로 형사 고발하겠다”며 반발하고 있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1일에도 논평을 내고 “당장 학업성취도 평가 강요 계획을 철회하라”고 했다. 시험은 학생 개인이 아닌 학교가 신청하게 되어 있어, 학생이 원해도 전교조 입김이 센 곳이면 시험을 못 본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교사 개인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학교마다 교장·교감, 담임 교사 등이 참여하는 협의회를 꾸려 자율 평가를 볼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협의회가 학부모·학생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교조 교사가 많은 학교는 자율평가를 안 받겠다는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현재 3% 표집으로 치르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통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라고 설명하지만, 교육계에선 “통계를 위해서라면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도 전수로 치르는 게 맞지만, 전교조와 야당이 ‘일제고사 부활’이라고 극렬 반대하며 정치 공세를 펼칠 게 뻔해 부담이 커서 못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많은 학교들이 맞춤형 평가를 치르더라도 결과는 교육청이나 교육부에 전달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 담임 교사(중·고교는 교과 교사)에게만 공개된다. 또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전국 평균’ 등 다른 학생 정보는 집계도, 공개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