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12조8915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15일 발표했다. 올해보다 2조3029억원(22%) 늘어, 1956년 설립 이래 최대 규모다. 예산이 많아 내년 다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9700억원은 ‘재정 안정화 기금’에 넣기로 했다. 태블릿PC 무상 지급과 전자칠판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수천억원을 들이고 학교 운영비를 학교당 1억원씩 더 뿌린다는 계획도 담겼다. 최근 세수가 늘면서 교육청 예산이 덩달아 넘쳐나자 돈 쓸 곳을 짜내고 짜내 예산을 22%나 늘리는 것이다.
올해 서울시교육청 예산 가운데 52%를 차지하는 인건비(6조7554억원)를 빼면 나머지는 교육사업비(2조6747억원), 학교운영비(1조1544억원), 시설사업비(1조506억원) 등이다. 교육사업비 중 10%가 넘는 2967억원을 ‘디지털 전환’에 투입한다. 올해 630억원을 들여 모든 중학교 신입생에게 태블릿PC를 나눠줬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선 학습에 방해가 되고 관리 부담이 크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그런데 내년엔 더 많은 830억원을 투입해 고등학교 신입생까지 나눠주기로 했다.
작년 중1 교실에 설치한 전자칠판을 내년 초등 5학년부터 고3까지 모든 교실에 놓는 데에도 1591억원을 쓴다. 전자칠판은 대형 디스플레이로 화면을 터치해 판서할 수 있고 이미지·동영상 등 시청각 자료를 띄울 수 있는 디지털 기기다. 미래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모든 교실에 다 설치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교사가 많다. 일부 교실에 설치해본 결과 기존 텔레비전이나 프로젝터 등으로 충분히 멀티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고 인터넷이 불안정할 때는 활용할 수 없어 오히려 수업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는 후기가 적지 않았다.
교육청은 또 학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운영비를 평균 1억원씩 더 주기로 했다. ‘학교공간 자율계획 사업비’ 명목이다. 지금까지는 오래된 화장실을 리모델링하거나 낡은 냉난방기를 교체할 때 해당 목적으로만 쓸 수 있도록 시설비를 지원해왔는데, 내년부터는 학교가 자유롭게 학교 공간을 고쳐 쓸 수 있도록 별도 예산도 내려준다는 것이다. 꼭 낡지 않은 공간이어도 교실 목적을 바꾸는 데 써도 되고, 가구나 비품을 살 수도 있다. 교육청은 “학교가 처한 상황과 여건에 맞게 교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으나, 학교 현장에서는 “멀쩡한 학교를 뜯어고치게 생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묻지 마’ 돈 뿌리기는 전국적으로 매년 반복되고 있다. 울산교육청은 지난해 9월 갑자기 ‘일상회복 학급운영비’라는 명목으로 모든 초·중·고·특수학급에 100만원씩을 뿌렸다. 모두 57억5700만원이 들어갔다. 울산의 한 중학교 교사는 “갑자기 돈이 떨어지니까 교사들이 대체 어디다 쓸지 몰라 허둥대다가 결국 많은 학급이 단체로 브랜드 옷을 사거나 치킨 쿠폰을 나눠주는 데 썼다”며 “이런 식으로 예산을 써도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직접 현금·지역화폐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전국 교육청은 코로나 교육재난지원금으로 작년(4887억원)과 재작년(1073억원) 6000억원을 지급했다.
올해 서울교육청 예산안은 규모뿐 아니라 증가 폭도 역대 가장 크다.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예산이 이례적으로 한 해 만에 22%나 늘어난 건 정부에서 전국 교육청에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올해 68조원(본예산 기준)에서 내년 80조원으로 늘기 때문이다. 최근 세수 확대로 교육청은 예산을 쓰다 남겨 저축할 정도로 풍족해진 반면, 대학들은 학생 수 감소로 직격탄을 맞아 고사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교육 재정 불균형’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초·중·고 1인당 공교육비는 2014년 OECD 평균을 앞지른 뒤로 계속 격차를 벌려 2019년 기준 초등학생은 OECD 평균의 134%, 중·고교생은 150%에 달했다. 반면, 대학생은 평균의 64%에 그쳤다. OECD 회원 38국 중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초·중·고보다 낮은 나라는 한국과 그리스뿐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로 전출 제외)를 17개 시·도교육청에 보내 유·초·중·고 교육에 쓰게 하는 돈. 현재 대학 이상 고등교육에는 쓸 수 없게 돼 있다. 학생 수가 급증하던 1972년 안정적인 공교육 지원 명목으로 도입했는데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고정 배정하니 경제 성장에 따라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다. 2013년 41조원에서 올해 76조원(추경 포함)으로 늘었고, 특히 학령 인구 감소로 학생 1인당 교부금은 같은 기간 625만원에서 1528만원으로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