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사립대 A 총장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은 매주 한 번씩 기업체를 운영하는 동문들을 만나는 일이다. 목적은 기부금 요청. “동문이니까 한 번 가면 1000만원씩은 냅니다. 많을 때는 5000만원도 내고…. 기부금 내는 곳이 많지 않으니 동문들 기부가 절실하죠.” A 총장이 이러는 건 대학 재정난 때문이다. 14년째 동결 중인 등록금에 정부 재정 지원도 기대에 못 미치고 결국 동문들 호의(好意)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이 기부금마저 갈수록 줄어 20여 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대학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 줄고 대학들이 기부금을 잘 운용하는지 의심하는 분위기마저 생기면서 대규모 기업 기부가 거의 사라진 탓이다. 학령 인구 감소, 등록금 동결 장기화, 기부금 수입 감소까지 대학들은 재정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18일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사립대 전체 기부금 수입은 총 4395억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로 인해 역대 최저 기부금을 기록한 2020년 3809억원보다는 소폭 늘었으나, 2002년 1조556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41.6%)다. 대학 전체 수입 대비 기부금 비율 역시 7.8%에서 작년 1.8%로 크게 줄었다. 활성화된 대학 기부 문화 위에 조성된 기부금으로 펀드까지 운영하며 자산을 불리는 미국 등 선진국의 대학들과 상반된 처지다. 미 하버드대는 2020~2021년 2년 동안 기부금으로 4억6500만달러(약 6100억원)를 거둬들였다.
국내 대학 기부금이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세금 혜택 축소다. IMF 외환 위기 당시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사립학교 등에 기부하면 소득세·법인세를 감면해주는 특례 제도가 1999년부터 한시적으로 운영됐는데, 사립학교는 2005년까지만 이 특례가 적용됐고 이후 기부금이 급감했다. 사립대 총 기부금 수입은 2000년 7942억에서 매년 늘어나다가 2003년(1조1938억)에 정점을 찍은 뒤, 2005년 5677억원으로 뚝 떨어지고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금은 기업이 대학에 기부하면 50%까지만 법인세 소득 공제를 해준다.
2013년 말 소득세법 개정으로 기부금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대상으로 전환된 영향도 있다. 법 개정으로 기부금의 공제율이 최대 38%에서 15%(1000만원 초과분은 30%)로 낮아지면서 고소득자들의 세금 혜택이 줄어들었다. 서울 지역 사립대 재무 담당자는 “안 그래도 기부금 문화가 확산되지 않아 힘들었는데 세금 혜택이 줄면서 상황이 나빠졌다”며 “해마다 기부하던 고액 기부자가 2014년에 세무 컨설팅을 받은 뒤 혜택이 크게 줄자 기부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에 대한 불신 등으로 기업이 거액 기부를 망설이는 측면도 크다. 기업 대표가 법인 예산으로 대학에 기부할 경우 사회적 반감을 사고 배임으로 처벌받는 위험도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기부를 꺼린다는 것이다.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기업인 중에 ‘대학에 기부해봤자 우리가 원하는 인재도 잘 못 키우는데, 왜 하느냐’며 다른 복지 단체에 하는 사람도 봤다. 대학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인 것 같다”고 했다.
기업체 기부가 줄자 대학들은 동문, 지역 주민 등 개인 기부금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충북 지역 한 사립대 재무팀장은 “특별공제가 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기부를 해 달라고 제안할 마땅한 명분이 없다”며 “대학 병원이 있는 곳은 건강검진 혜택이라도 내세울 텐데, 그마저도 없는 학교는 ‘애교심’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라는 추상적인 말로 기부금을 모으려니 당연히 빈손”이라고 말했다.
대학과 교육부는 몇 년 전부터 “소액 기부 특례를 신설해 달라”며 기획재정부에 요청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치 후원금과 마찬가지로 대학 기부금에 대해서도 10만원 한도 내에서 100% 세액공제를 해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개인 기부금은 15%(1000만원 이상은 30%)까지만 세액공제가 된다. 하지만 기재부는 사회복지법인 등 다른 비영리법인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김병준 대학발전기금협의회 회장은 “등록금도 묶여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운영 재정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정부 지원과 기부금뿐”이라며 “대학 기부금이 활성화돼야 대학 재정의 숨통이 트이고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