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김모(45)씨는 중2 아들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학원 스케줄’을 만들어 책상에 붙여줬다. 아들은 스케줄에 따라 월·수는 수학, 화·목은 영어, 금요일은 독서·토론, 토요일은 코딩 학원에 다닌다. 중간에 하루는 미술학원, 30분 한자 수업도 듣는다. 한 달에 아들 사교육비만 150만원. 김씨는 “방학이라서 늦잠 자고 오전 내내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는 거 보면 ‘대학이나 가겠나’ 걱정되고 마음이 불안하다”면서 “학원비가 너무 부담되긴 하지만, 애가 집에 있는 것보다 학원 가면 이것저것 배우니까 선행 학습도 되고 내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김씨처럼 학원비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럽지만 효과가 있다고 믿는 학부모들이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아이들조차 학원에 가야 한다는 응답도 늘었다. 사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믿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22 교육 여론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 학부모 5명 중 1명(21.1%)은 사교육 비용 부담이 크지만(고부담) 효과도 높다(고효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중부담·중효과(12.7%), 고부담·중효과(12.4%), 고부담·저효과(11.2%) 순으로 많았다. 지난해엔 사교육비 부담은 많이 되지만, 효과는 중간 정도라는 ‘고부담·중효과’가 16.4%로 가장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학부모 10명 중 4명은 ‘자녀가 공부를 안 하고 있으면 불안’(40.8%)하고, 아이가 학원에 가거나 과외 공부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36.7%)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어도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학부모도 40.5%나 됐다. 학부모 10명 중 2명(17.9%)은 ‘공부에 도움 되지 않는 취미 활동은 하지 말라고 말린다’고 대답했다.
연구 책임자인 권순형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학부모들이 사교육 효과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 학업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 사교육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는 공교육에 대한 누적된 불신에다 코로나 시기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사교육 의존도가 더욱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2021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36만7000원)와 사교육비 총액(23조4000억원)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초등학교 사교육비 규모가 크게 늘었는데, 코로나 기간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원의 대체 역할을 했던 방과 후 수업까지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부모 부담은 커지는 상황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는 사교육비 부담 경감 대책을 내놓지 않아 비판(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민들의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려면 공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학부모들을 사교육으로 몰아가는 동력은 불안감이기 때문에 이를 줄여주려면 학교에서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초·중·고교 모두 질은 높고 비용은 저렴한 양질의 방과 후 수업 등을 운영해서 학교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