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방학식을 준비 중이던 서울 지역 2년 차 초등학교 교사 A(26)씨는 교장에게 당황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학교 폭력 대응 업무 등 학생생활지도뿐만 아니라 체육대회 등 예체능 관련 업무까지 담당하는 ‘인성체육부장’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다. A씨는 “원래 고(高)연차 교사들이 맡았는데 선배들이 온갖 진단서를 떼와 ‘아파서 못한다’면서 1주일 내내 시위하더라”면서 “‘그래도 설마 나한테 맡기겠나’ 남 일처럼 여겼는데 갑작스레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미 담임까지 맡고 있었는데 짐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부장 교사는 통상 학교에서 교장·교감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보직이다. 교장·교감과 평교사 사이 가교(架橋) 역할을 하면서 교사들을 이끌어야 할 때가 많다. 적어도 10년 이상 교직 생활을 해야 맡기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엔 수당은 적고 일만 많다는 이유로 다들 기피하면서 ‘2030′ 저연차 교사들에게 떠넘기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부장 교사 9만3832명 중 2만1523명(22.9%)이 20~30대였다. 이미 2018년에도 2만324명(21.9%)에 달했는데 매년 늘고 있다. 20대 ‘부장 교사’는 1572명(1.7%)에서 2228명(2.4%)으로 증가 폭이 더 크다.
이런 연소화(年少化)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학년 부장 자리를 맡게 됐다는 경기 지역 3년 차 고교 교사 B(30)씨는 “어쩔 수 없이 맡긴 했는데 작년에 해보니 교장 선생님 지시를 전할 때마다 고참 선배 교사들이 번번이 딴지를 걸더라”면서 “중간에 끼어 난감했던 기억 때문에 올해는 절대 안 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안 하려 해서 교장 선생님이 또 간곡하게 부탁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맡았다”고 전했다. 교단 경험이 적은 젊은 교사들이 중요한 행정 보직을 맡다 보니 과부하에 시달리고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면서 학생들까지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단 보직 기피 풍조는 ‘부장 교사’ 자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학급 담임도 비슷하다. 작년 4월 기준 전국 중·고교 담임 교사 11만295명 중 기간제 교원은 27.4%(3만173명)에 이른다. 2013년 15.1%에서 급증했다. 중학교는 담임 교사 5만4373명 중 28.5%(1만5494명)가 기간제 교원이다. 중학교 기간제 교원 2만2948명 중 절반 이상이 담임 업무를 맡은 셈이다. 기간제 교사들이라고 담임을 맡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정규 교사들이 꺼리는 바람에 이들에게 몰린다는 게 문제다.
교사들이 부장·담임을 맡기 싫어하는 건 업무량은 많지만 보상이 부족하다는 게 주원인으로 꼽힌다. 부장 교사 수당은 2003년 이후 월 7만원, 담임 교사는 2016년 이후 13만원으로 동결돼 있다. 부산 한 초교 교사는 “(보직을 안 맡아도) 체감상 행정 대 교육 업무 비율이 7대3 정도인데, 부장은 더 높아진다”며 “평소에도 아이들 수업 끝낸 뒤 숨도 안 돌리고 행정 업무 처리해도 2시간 남짓 남은 퇴근 시간까지 다 마치는 게 불가능한데 부장이 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보직을 맡으면 각종 학내 분쟁 등 책임질 일은 많아지는데 교권 보호 장치가 미흡한 점도 불만이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갈수록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교사들도 교권 침해에 고소·고발 대상까지 되다 보니 책임이 더 무거운 부장이나 담임 교사를 누가 하고 싶겠냐”면서 “수당을 올려주고 행정 업무를 줄여주면서 교권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