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정시 최초 합격자(등록 전 합격자) 중 이과생이 문과생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회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 정시모집에서 문·이과 모두 지원할 수 있는 학부(학과)에 최초 합격한 640명 중 330명(51.6%)이 이과생이었다. 대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선택과목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은 이과, ‘확률과통계’를 선택하면 문과생으로 분류한다. 수능이 처음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진 지난해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합격자 가운데 이과생이 44.4%였는데 올해는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문·이과 구분 없이 선발하는 인문·사회·예체능계열 학과 30개 가운데 이과생이 더 많이 합격한 학과가 14개에 달해, 작년 7개의 두 배가 됐다. 자유전공학부는 최초 합격자 전원이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생이었고 윤리교육과(71.4%)나 사회학과(60.0%) 같은 전통적인 인문사회계열 학과에도 이과생이 더 많이 합격했다.
경제학부는 이과생이 합격자의 74.3%(70명 중 52명), 경영학부는 67.2%(58명 중 39명)에 달했다. 사범대학에서도 국어교육과(60.0%), 영어교육과(80.0%), 지리교육과(75.0%), 체육교육과(54.8%)에서 이과생 합격자가 더 많았다. 역사학부(동양사학·서양사학·국사학과)도 절반(50.0%)이 이과생이었다. 정시 모집 인원의 50%를 문·이과 구분 없이 뽑을 수 있는 간호대에서는 전원 이과생이 선발됐다. 통합수능에서 수학의 변별력만 너무 커지면서 이공계든 인문사회계든 전공을 막론하고 최상위권 대학 합격증을 이과생이 차지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은 이공계나 의·약학계열 지원 조건으로 수학 미적분/기하와 과학탐구를 반드시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과생은 인문·사회대에 지원할 수 있지만 문과생이 거꾸로 공대·자연과학대 등에 지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이과생이 인문계열에 합격하는 것을 두고 ‘문과 침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 서울대 입시에서는 ‘문과 침공’ 현상이 지난해보다 훨씬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대한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경희 의원은 “특정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불리한 현행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주요대 입학처장과 간담회를 갖고 문과생도 이공계열에 지원할 수 있도록 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문과생의 이공계 교차 지원이 가능해지더라도, 상위권 대학 인문사회계열을 이과생이 점령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과생이 수학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능 성적표에는 100점 만점의 ‘원점수’가 아니라, 과목 난이도에 따라 보정한 ‘표준점수’와 이에 따른 등급만 나온다. 표준점수는 시험이 어려울수록 올라가고 쉬우면 내려가는 상대적인 점수로, 확률과통계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미적분·기하를 보면 원점수가 같아도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는다.
한 수학 교사는 “미적분을 보면 4점짜리 문제 하나를 더 틀려도 확률과통계 응시자와 표준점수가 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수학 1등급 중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수험생 비율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입시 업계에서는 90%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역사학이나 사회학처럼 어려운 수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전공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조차도 수학 공부 부담이 과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서 수학의 변별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입시를 위해 자신의 진로·적성과는 무관한 공부를 해야 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