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올라온 중학생 명품 가방 쇼핑 브이로그 영상. 최근 초·중·고생이 명품을 구매하거나 고급 호캉스를 즐기는 브이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

유튜브 영상 속 고급 원피스를 입고 진한 눈 화장을 한 여자가 친구들과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 쇼핑을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호캉스(호텔+바캉스)’를 하러 화려한 특급 호텔로 향한다. 몇 달 전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의 제목은 ‘10년생 브이로그’. 주인공은 초등학생이었다. 댓글에는 “언니 너무 부러워요” “나랑 동갑인데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지” 같은 반응이 달렸다. 이 유튜버가 서울 한 사립초 학생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학교 학부모 사이에선 “전혀 초등학생 같지 않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따라 화장하거나 명품을 사달라고 할까 봐 걱정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유튜브나 틱톡에는 이 같은 어린 인플루언서의 영상이 늘어나고 있다. 초등·중학생이 수백만 원어치 명품을 쇼핑한 뒤에 하울(haul·제품 사용 후기)하는 영상이나 ‘12살 데일리 메이크업’ 등 제목으로 초등학생이 색조 화장을 하면서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틱톡에도 ‘○○살 첫 명품백, 엄마 아빠 고마워요’라며 명품을 자랑하는 영상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중고생 명품 쇼핑 브이로그는 조회 수가 50만~80만회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게시물이 또래 청소년들에게 외모 강박이나 명품 소비 등 사치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24)씨는 “초등학생들에게 틱톡이나 유튜브 영상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며 “필터(화장이나 성형한 듯한 특수 효과를 내주는 기능)를 씌운 영상인 줄 모르고 예뻐 보이니 무작정 따라 하려다가 화장을 지나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도 ‘틱톡 필터를 한 사진처럼 되고 싶은데 앞트임 수술을 해야 하느냐’ 등 질문이 올라온다.

청소년의 외모 관심은 초등학생까지 내려가는 추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0년 ‘또래 문화를 통해 본 청소년의 성 평등 의식과 태도 연구’에 따르면, 색조 화장 경험이 있는 초·중·고 청소년(3743명)의 절반 이상(54.7%)은 초등학생 때 시작했다고 답했다. 초3 이하도 6.2%에 달했다. 또 초등학교 6학년(1509명)의 1.8%는 성형수술을 받은 적 있고 15.3%는 ‘성형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청소년의 화장 문화는 소셜미디어와 또래 집단을 거쳐 어린이 세대로 전이된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화장에 대한 관심사 공유는 유튜브의 뷰티 콘텐츠를 통해 확장된다”고 분석했다.

명품 소비도 저(低)연령화가 뚜렷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 1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첫 명품 구매 연령은 평균 15세로, M세대(1980년대~1990년대 중반 출생)보다 3~5년 빠르다. 보고서는 이른 시기에 명품을 사는 경향은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에도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청소년 명품 열풍은 지나친 사치일뿐 아니라, 신종 학교 폭력에 이용되거나 사기 범죄에 노출될 수 있어 폐해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가 외모지상주의를 심화한다고 진단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또래 동조화 심리가 강한 청소년들은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명품 소비나 화장이 당연한 것이고, 안 하면 소외되거나 뒤처진다는 생각을 한다”며 “소셜미디어는 화려해 보이는 부분을 전부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개인의 자신감과 만족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어린 학생들이 주로 쓰는 소셜미디어가 페이스북 같은 텍스트(글)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 미디어로 바뀌면서, 겉으로 보이는 외모 강박과 자기 과시욕이 심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려면 청소년들이 사진과 영상을 볼 때 스크롤하는 중간중간 ‘잠시 멈춤’을 하고 이 영상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화장품이나 명품 등 물건을 사도록 유혹하는 건 아닌지 등을 돌아보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