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가 교육 현장에 도입된 지 10여 년 만에 폐지하거나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학생 권리를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교권이 제한받는다는 비판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16일 기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인 6곳 중 4곳에서 폐지 또는 개정 움직임이 있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지난 15일 시의회 교육위원회에 회부했다. 작년 8월 종교계와 학부모단체 등으로 이뤄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가 “학생인권조례가 표현·종교의 자유와 부모 교육권을 침해한다”면서 조례 폐지 서명을 받아 제출했고, 시의회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폐지안이 시의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면 조례 제정 11년 만에 폐지된다.
충남도의회 역시 충남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 달라는 조례안을 제출해 검토하고 있다. 경기·전북교육청은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서울과 충남은 국민의힘이 지방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폐지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기 임태희 교육감과 전북 서거석 교육감은 “학생인권뿐 아니라 교직원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 처음 제정된 뒤 2012년 서울과 광주, 2013년 전북, 2020년 충남·제주 등 6곳에서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지역마다 세부 내용이 다르지만 체벌 금지와 두발·복장 규제 금지 등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경기·광주·서울·충남 조례에는 성별, 종교, 성(性)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명시돼 있다.
한국교총 등 교육계 일각에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교사들의 학생 지도가 힘들어졌고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작년 한국교육개발원이 국민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2188명(54.7%)이 ‘교권침해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937명)’가 가장 많이 꼽혔다.
반면 전교조 등은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반헌법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외교부를 통해 유엔(UN)에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절차에서 한국을 공식 방문해 학생인권조례 폐지 관련 상황을 직접 조사하고 평가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