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같은 인공지능(AI)은 노동시장을 송두리째 바꿀 겁니다. 앞으로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단 뜻입니다. 대학도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AI 시대, 대학의 길을 묻다’ 포럼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선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은 “지금과 같은 대학 구조로는 AI 시대에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올 9월 문을 여는 태재대학교와 비영리 싱크탱크 태재미래전략연구원, 그리고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포럼에선 미국 미네르바 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스티븐 코슬린 교수, 김성일 고려대 사범대학장과 정제영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장이 나서서 AI 시대 인재 육성에서 대학의 역할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좌장은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이 맡았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교수들은 대화형 AI 챗GPT의 등장으로 변호사·은행원과 같은 유망 직업들이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지만,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계기도 되고 있다고 했다. 오 전 총장은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직장에서 무슨 지식과 기술을 사용해 일할지 모르는데, 지금처럼 선진국의 지식 따라잡기식 교육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학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가들을 양성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외에선 AI와 효율적으로 대화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고연봉 직군이 새롭게 생겨났다. AI 시대 핵심 역량은 사고력이고, 대학은 주입식 교육장에서 ‘생각 훈련소’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화상으로 토론에 참석한 코슬린 전 학장은 “앞으로는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해 ‘정보’로 만들고, 정보를 모아 ‘지혜’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며 “AI에 창의적 임무를 부여하고, AI의 작업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미네르바 대학은 미국 수능인 SAT 성적을 보지 않고, 강도 높은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시험 대신 미리 학습해온 지식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김성일 고려대 사범대학장은 미래형 인재를 ‘주체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김 학장은 “챗GPT는 질문을 창의적으로 잘할수록 답변의 질이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며 “지금까진 지식의 양이 대등한 두 사람이 비슷하게 ‘똑똑하다’고 봤다면, 앞으론 AI에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에 따라 개인별 수준 차이가 크게 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고력 육성을 목표로 한 AI 시대의 대학엔 전공도, 교실도, 시험도 다 필요없어질 것”이라며 “가까운 미래에 기업들은 입사 면접에서 ‘당신은 무슨 전공 과목을 들었나요’가 아닌 ‘무슨 문제를 해결해봤나요’를 묻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대학 제도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정제영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장은 “학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오프라인 면대면 수업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며 “근대 대학은 사회와 단절돼 있는 ‘상아탑’의 형태인데, 앞으로는 사회와 더 긴밀하게 융합하는 산학협력의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또 “특히 코로나 이후 디지털 대전환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라며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만큼 대학과 사회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