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 인근 A대학 운동장에선 영어와 인도어가 섞인 함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인도와 네팔 학생 10명이 크리켓 경기를 하고 있고, 축구와 배구를 하는 외국인 학생도 보였다. 같은 시각 강의동에서 중간고사를 치르던 20여 명도 모두 외국인이다. 이 캠퍼스 학생 1000여 명 중 900여 명이 20국에서 온 외국인 학생이다. 20국 중 네팔에서 온 학생이 가장 많고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순이다. 작년부터 한국인 신입생은 딱 1명만 받고 있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지원해 입학한다고 한다. 다른 한국 학생들은 야간반에 다니는 지역 직장인과 군인들이다. 내년 2월 이들이 졸업하면 이 캠퍼스 학생의 99%는 외국인으로 채워진다. 행정실엔 한글 대신 영어 서류가 놓여 있고 게시판엔 ‘Looking for someone to work in a restaurant(식당에서 일할 학생 구함)’라는 영어 구인문도 보였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인도·네팔 유학생들 축구 대신 크리켓 - 지난달 24일 강원도 속초 인근 한 대학의 잔디구장에서 인도와 네팔 출신 학생들이 모여 크리켓 경기를 하고 있다. 이곳 캠퍼스 학생 1000여 명 중 900여 명이 20여 나라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이다. /윤상진 기자

이 대학은 인구 감소로 한국인 신입생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이 캠퍼스를 ‘외국인 전용’으로 만들었다. 2017년 학과 구조조정을 시작해 국내 학생들은 다른 캠퍼스로 옮기고, 이곳엔 외국인 유학생이 다니는 학과 4개를 설치했다. 한국인 신입생 1명을 뽑은 것도 정원 안에 최소 1명은 있어야 ‘정원 외 외국인’을 선발할 수 있다는 교육부 지침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사 위기인 대학들이 늘어나자, 교육부는 작년 5월 외국 유학생들로만 학과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외국인 100%’ 캠퍼스 설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교육부는 최근 2024학년도 대학 정원을 1829명 늘린다고 밝혔다. 반도체 등 ‘첨단 학과’ 증원이라고 하지만 학생 감소로 ‘외국인 99%’ 대학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부실대 정리 등 구조 조정이 더 시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후 2시가 되자 이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국가에서 온 학생이 대부분이라, 학교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오후 2시에 모든 수업이 끝나게 학사일정을 짰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만난 수잰(24)은 “한국은 네팔보다 생활비가 훨씬 비싸서 주중엔 하루 4시간씩 근처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시급은 1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한 지역 상인은 “그동안 일손을 구하지 못해 고생했는데 유학생들 덕분에 한시름 덜었다”고 했다. 노동력이 공급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활기가 생겼다는 반응도 있다.

반면 경남 진주의 한국국제대 간호학과 학생들은 학교 재정난으로 강의할 교수가 없어 졸업하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졸업 학점을 채우지 못할 경우 간호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도 얻지 못한다.

이 대학은 2018년 대학기본역량 진단에서 ‘부실’ 판정을 받았으며 간호학과 전임교수 7명 중 5명이 임금 체불로 사직했다. 남은 두 교수가 재학생 98명을 위해 교수 1인이 맡을 수 있는 수업 시간의 3~4배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초과 시간은 학점 인정이 안 돼 학생들 졸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 학생은 “일부 수업은 듣고 있기 때문에 (연 7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안 낼 수도 없다”며 “생업을 포기하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온 친구들도 있는데 학교 상황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니 속상하다”고 했다.

국제대 간호학과 학생들의 대책 마련을 위해 2일 국가교육위원회 김태일 위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김 위원은 “간호학과 학생들은 학교를 믿고 이번 학기에도 등록금을 냈고, 남은 교수들은 사명감을 갖고 수업을 하고 있다”며 “인근 대학과 연계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교육 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처럼 전국에는 학생 부족 등으로 폐교 직전에 몰린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학생이 없으면 재정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신입생을 구하지 못해 문 닫을 위기인 대학들은 외국인 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방 사립대의 국제 교류 담당인 한 관계자는 “최근 학교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현지 에이전트(브로커)에게 학생 1명당 한 학기 등록금을 (유치 사례금으로) 준다는 경우도 생겨났다”고 했다. 8학기 등록금 중 7학기는 학교가, 1학기는 에이전트가 가져가는 구조다. ‘현지 방문 모집’에 나서는 대학도 많다. 지방 B대학은 중국 현지 고등학교와 협약하고 한국어 강사를 파견해 중국 학생들에게 졸업 전 6개월 동안 ‘한국어 수업’을 제공한다. 유학생들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한 목적이다. 대학 측은 “중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로 이탈하는 걸 막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유학생을 모으면서 중국이 절대 다수이던 유학생 국적 비율도 바뀌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외국인 유학생 21만4000여 명 중 베트남이 7만38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이 6만7450명으로 2등이었다. 그 뒤가 우즈베키스탄(1만2250명), 몽골(1만2220명) 등이다. 코로나 전인 2018년엔 유학생 16만명 중 중국이 6만8900명, 베트남이 4만5100명이었다. A대학 관계자는 “중국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며 최근 중국 학생들은 지방 대신 서울의 세계대학평가(QS) 순위가 높은 학교로 가려고 한다”며 “지방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학생 등을 유치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대학의 ‘유학생 모시기’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북의 C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 비자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들어오는 외국인을 걸러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학생 비자 만료로 불법체류자가 증가한 지역에선 주민들이 ‘치안 불안’을 호소하기도 한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유학 비자(D-2)로 들어온 외국인 중 불법체류자 비율은 2018년 1.3%(1400명)에서 작년 말 7.1%(9800명)로 껑충 뛰었다.

교육부는 지역의 부족한 노동력과 연계해 유학생을 유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전까진 유학생 유치 숫자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젠 지역 인력 수요와 연계해 유학생을 유치하고 이들의 한국 정착까지 돕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인 돌봄 인력이 필요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역 대학에 ‘요양케어 학과’를 만들어 유학생에게 한국어와 전공 기술을 가르치고 돌봄 업체에 취업까지 알선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학생에겐 ‘지역 특화형 비자’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교육부는 또 외국인 학생의 주중 시간제 취업 허용을 늘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유학생의 기여도를 대학 국제화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윤소영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우리 학생들은 지역의 산업 일자리에는 안 가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역 대학을 졸업한 해외 유학생이 지역의 인력 수요를 채운다면 지역과 대학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속초 고성=윤상진 기자, 신지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