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경북 경주시 내남면 ‘한국어 교육센터’. 통학버스에서 내린 외국인 초∙중학생 수십 명이 서툰 한국말로 등교를 마중 나온 교사들에게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인사했다. 이곳은 경북교육청이 폐교를 활용해 만든 교육 시설로, 올 4월부터 경주에 사는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러시아 등에서 온 학생 70여 명이 3개월간 한국어를 배운다. 편의점 하나 없는 농촌 마을이지만, 운동장의 아이들 함성으로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원래 초등학교였던 이곳은 폐교 이후 수십 년간 건물이 방치돼 주민들도 접근을 꺼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한 주민은 “한국어 학교 덕분에 동네에 활기가 도는 느낌”이라고 했다.
인구 감소로 전국에 폐교가 증가하는 가운데 시도 교육청들의 폐교 활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종전엔 캠핑장∙수련원 등으로 이용됐지만 최근엔 지역 수요에 맞춘 시설로 탈바꿈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장애인 같은 소외 계층을 보듬는 공간으로 변하기도 하고, 수목과 유기묘들을 보호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폐교도 등장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이 관리하고 있는 폐교 1336곳 중 978곳(73%)이 다른 용도를 찾았다. 미활용 상태는 358곳(27%)이다.
경주는 경북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가장 많은 도시다. 2021년 기준 4250명에 달한다. 몇 년 전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다문화·외국인 학생 입학이 70%을 넘어서자, 경북교육청은 이들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폐교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다문화 가정보다 외국인 부모를 둔 학생들은 한국어 소통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어 교육센터 김승호 교사는 “언어 문제로 정서적 어려움을 겪던 외국인 학생들이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하반기 과정까지 모집이 마감됐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
폐교가 지역 ‘랜드 마크’로 변신한 경우도 생겼다. 창원시에 위치한 ‘마산 지혜의바다 도서관’은 경남교육청이 폐교된 중학교 체육관을 2018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주차장으로 이용하던 1층에 가벽을 세워 레고방·보드게임방·창작공간 등 7개 체험 공간을 만들었고, 2~3층 벽면엔 책장을 둘러 서울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처럼 꾸며놓았다. 기존의 체육관 무대는 공연장으로 활용해 매주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등 공연을 한다. 두 살배기 딸과 이곳을 방문한 김은지(31)씨는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책을 보여줄 수 있어 키즈카페 대신 이 도서관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약 14만권의 책을 보유한 이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며 작년 한 해 이용자만 71만명에 이른다.
대구교육청은 달성군에 위치한 폐교 운동장을 ‘나무은행’으로 만들고 벌목 위기에 처한 나무들을 ‘임시 보호’한다. 650평 규모 나무은행엔 수목원처럼 느티나무∙왕벚나무∙소나무 등 200여 그루가 심겨 있다. 학교를 증∙개축하는 과정에서 멀쩡한 나무들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나무들을 이곳에 옮겨 심어두는 것이다. 2020년 운영을 시작한 나무은행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나무를 보관하거나 신설 학교에 나무를 무료로 분양해주기도 한다. 대구교육청은 나무은행으로 절감하는 나무 구입 비용이 매년 200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지자체들도 폐교 활용에 뛰어들고 있다. 강화군은 100억여원을 들여 올해 말까지 폐교 건물을 고성능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로 만들기로 했고, 통영시는 섬마을 폐교를 길고양이와 유기묘 등을 보호∙분양하는 ‘고양이 학교’로 꾸며 하반기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채홍준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과장은 “현재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시도 교육청 등과 폐교의 다양한 이용을 위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대구·경주·창원=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