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임기 4년을 마친 총신대 이재서(70) 전 총장은 기자의 작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 손님이 온 걸 바로 알아챘다. 이 전 총장은 2019년 국내 첫 시각장애인 대학 총장으로 뽑힌 뒤 성공적으로 임기를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 총신대는 전국 1만2000여 교회가 속한 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세운 대학인데, 사회복지학 전공인 이 전 총장은 ‘비(非)신학과’ 출신 첫 총장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 “근무일엔 하루 50개 넘는 서류를 검토하고 서명했다”고 말했다. 임기 중 193개 교회 예배를 방문했고 161억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한 해 평균 40억원이 넘는다. 2년간 코로나 격리가 겹쳤고 작년 수도권 사립대 평균 기부금이 28억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증명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그가 총장이 되기 직전 총신대는 위기에 빠져 있었다. 총장 선출을 놓고 교파 갈등이 극심했고, 학내 비리로 재단 이사 전원이 쫓겨나 교육부가 임시 이사를 파견한 상태였다. 학생들이 점령한 학교에 재단 측이 동원한 용역들이 유리문을 부수고 난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정년을 1년 앞둔 이 전 총장은 ‘비상교수회의’ 의장을 맡아 학교 정상화에 앞장섰다. 비신학과 교수여서 파벌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다. 반년쯤 비상교수회의를 이끌었더니 ‘총장 출마’를 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엔 ‘누굴 놀리나’ 싶었지만 여러 교수가 추천하자 생각을 바꿨다. 11명이 후보였는데 이사 전원이 그를 총장으로 찍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학교 정상화를 위한 구원 투수로 앞을 전혀 못 보는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1977년 총신대에 입학 원서를 낼 때는 ‘앞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공부할 거냐’고 쫓겨날 뻔했는데, 이제는 시각장애인도 총장으로 뽑는 세상이 됐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총장 취임 후 서류와 씨름했다. 회의 자료는 미리 받아 ‘점자 정보 단말기’를 이용해 손으로 읽었다. 문서 파일을 단말기에 넣으면 키보드 위치의 점자판에 문서 내용이 ‘시각장애인용 점자’로 표시된다. 간단한 문서는 아내 한점숙씨와 비서가 읽어줬다. 그는 “시각장애인도 점자 정보 단말기를 이용하면 남들처럼 읽고 쓰고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이메일과 메신저도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스로 처리했다. 주말에는 대학 재단과 관련한 전국의 교회를 돌면서 기부금을 모았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갈등을 겪던 교파 인사들을 만나 설득했다. 그는 “가난도, 실명도 견뎠는데 (갈등 교파의 비난을) 참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했다. 총신대는 2021년 교육부 파견 이사 체제를 끝냈다. 정상화 궤도에 올라선 것이다.
이 전 총장은 전남 순천시 외곽의 농가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 하고 농사일을 도왔다. 15세 어느 날 열병 후유증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방에 누워 있으면 “사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부모님은 중학교 보내줄 형편도 아니었지만 무리해서 서울 맹학교에 넣어줬다. 공부가 인생의 빛이 됐다. 미국에서 석·박사를 받고 교수가 됐다.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선교 단체 ‘밀알선교단(현 세계밀알연합)’도 만들었다. 그는 “절망을 견디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미래가 나를 기다린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