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X”. 지난달 오후 서울 대치동의 한 소아청소년정신과 병원. 상담 중이던 중학생 A군이 갑자기 부모를 향해 욕을 하면서 문을 차고 나갔다. 학교 상위권이던 A군은 어느 순간 ‘대치동 코스’를 이탈했다.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며 등교를 거부했다. 진단은 우울증이었다.

고교생 B양은 “돈 걱정 말라”는 부모님이 부담스럽다. “나 때문에 큰돈 쓰는 게 너무 미안하고 빚을 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병원 의사는 “어떤 고교생은 아버지가 학원비 내역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 내밀면서 ‘너한테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 아느냐’며 부담을 줬다”고 전했다. 한 여중생의 부모는 감시하려고 아이 공부방의 문까지 떼냈다고 한다. 지난해 국내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인 26조원으로 뛰었는데 우리 아이들의 ‘마음의 병’도 급증하고 있다.

19일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실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만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2019년 3만3536명에서 2021년 3만9870명으로 18.9% 증가했다. 작년 상반기에만 전년도 전체에 육박하는 3만399명을 기록했다. 불안 장애도 2019년 1만6797명에서 2021년 2만3593명으로 급증했다.

그래픽=박상훈

◇'투자’ 강조하는 부모에 아이는 좌절

배승민 가천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에 더해 ‘취업이 어렵다’는 불안감까지 갖고 있다”면서 “‘의대 열풍’은 요즘 세대가 강요받는 성공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고 했다. 부모 세대는 지금처럼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대학에 갔고, 취업을 했기 때문에 자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찬호 마음누리학습클리닉 원장은 “요즘 부모가 아이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크다 보니 내심 ‘내가 투자한 돈이 얼만데’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도 이걸 다 알아 ‘내가 본전도 못하는 자식’ 같다고 많이 미안해한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소셜미디어’ 따돌림에 스트레스

신의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코로나가 풀린 뒤 학교에 돌아온 아이들의 사회성이 예전 같지 않다”며 “어떤 아이는 짝꿍한테 말 거는 것도 힘들어하고 사회성이 떨어진 아이들끼리 부딪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코로나 기간 중 ‘소셜미디어’가 또래 소통의 중심이 되면서 따돌림 등이 교묘해진 것도 문제다. 서울의 중학교 교사 김모(33)씨는 “소셜미디어 댓글이 몇 개인지, 나 빼고 누가 모여 놀았는지, 누가 더 예쁜지 쳐다보면서 서로 비교하는 게 요즘 학생들의 일상”이라면서 “거기서 뒤처질까 봐 스트레스 받는 애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담당자는 “(청소년이 올린) 인터넷 글을 보고 위험해 보여 112에 출동을 요청한 게 넉 달간 47건”이라고 했다. 강남의 한 고교 교장은 “학생 정신 건강 상태를 검사해보면 30%는 ‘고위험군’으로 나온다”며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강남에 집중

‘마음의 병’을 앓는 청소년이 증가하면서 소아청소년 정신과 병원도 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등록된 전국 소아청소년 정신과 병원은 2015년 275곳에서 올해 498곳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중 10%(56곳)가 서울 강남 3구(區)에 몰려있다. 대학병원의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우울증·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이 워낙 많아 (진료 예약이) 2028년까지 꽉 차 있다”고 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폐쇄 병동엔 ‘고위험군 청소년’ 환자가 많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조현병 환자가 대다수였는데 바뀐 것이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서 중고생의 28.7%가 ‘최근 1년간 2주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한 일이 있다’고 답했다. 2013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치다. 홍현주 한림의대 교수는 “청소년 정신 건강 전담 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부모도 자신과 자녀의 성공을 동일시해 스트레스를 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