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출제진에게 참여 사실을 포함해 출제 과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비밀을 지킨다는 ‘서약서’를 받는다. 출제 경력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제진 경력을 내세우며 학원 강사로 활동하거나 모의고사를 파는 등 서약서를 위반한 사실이 여러 차례 드러났는데도, 평가원이 조치를 취한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평가원은 수능을 시행한 이후 줄곧 비밀 유지 서약을 받아왔다. 하지만 2017학년도 수능 이전까지는 서약을 어기더라도 법적 조치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서약서에 위반 시 법적 조처를 한다는 문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능 출제 8회 경력’을 홍보하며 모의고사를 만들어 학원에 판매하는 연구소 대표도 2016년 이전 출제자라서 법적 조치가 어렵다는 것이 평가원의 설명이다.

서약서의 법적 조치 규정은 2016년 수능 모의고사 출제에 참여한 현직 교사가 학원 강사에게 문제를 유출한 사건을 계기로 등장했다. ‘서약을 어기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홈페이지나 프로필 등에 수능 출제·검토 참여 경력을 노출하면 조치 불이행에 대한 책임(1일당 50만원)을 진다’ ‘손해배상 책임과 별개로 자신이 지급받은 보수의 2배 금액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서약을 어겨서 법적 조치를 취한 적은 없다고 한다. 평가원 관계자는 “언론을 모니터링하거나 제보가 들어오면 조치하겠지만 아직 그런 문제가 밝혀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이권 카르텔을 “평가원이 수십년간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