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교육부는 올해 수능에서 안 내기로 한 ‘킬러 문항’ 예시 26문제를 공개했다. 오는 11월 16일 치르는 2024학년도 수능 시험에서 이런 유형의 문제는 배제된다는 걸 수험생들에게 미리 알려줘 대비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치 수능과 올해 6월 모의 평가를 분석한 결과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공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했다. 단순히 오답률이 높다고 해서 킬러 문항은 아니라고 교육부는 밝혔다. 교육과정에서 다룬 내용인데도 고난도라 오답률이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공교육에서 대비할 수 있는 문제’인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국어 영역에선 일곱 문항이 킬러로 제시됐다. 2022학년도 수능 8번 문제는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해야 했다. 교육부는 이 문항에 대해 “학교 수업에서 다루는 수준보다 높은 인문·철학적 배경 지식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또 ‘정립’ ‘반정립’ ‘수렴적 상향성’ ‘절대 정신’ 등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고 지문에서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아 학생들이 정답을 추론하기 어려웠다고 봤다. 같은 해 국어 15번 문제는 ‘차량용 보조 영상 장치의 원리’라는 기술 지문이 나왔다. 교육부는 “지문 분량은 적지만, 제공한 정보가 적어 정답을 생각해내기 쉽지 않고 선택지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 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지난 6월 모의 평가에서 조지훈의 ‘맹세’와 오규원의 ‘봄’ 작품을 읽고 답을 고르는 문학 문제도 킬러로 꼽혔다. 이 문항도 풀이 과정이 복잡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드는 점이 문제라고 교육부는 밝혔다. 이 밖에 ‘기초대사량, 클라이버 법칙’ 등을 다룬 과학·수학 융·복합 지문(작년 수능 국어 15·17번)도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힌 학생에게 유리한 것으로 지적됐다.
킬러 문항 중에는 수학이 9문제로 가장 많았다. 수학에서 퇴출시켜야 할 킬러 문항은 고교에서 개념을 배우지만 여러 가지를 결합해 사교육 도움이 필요한 문제로 분석됐다. 6월 모의 평가 22번 함수 문제나 30번 미적분 문제가 그런 사례였다. 또 대학 과정을 배운 학생들이 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2022학년도 수능 기하 30번은 대학에서 배우는 ‘벡터의 외적’ 개념을 활용해야 했다. 이는 대학 과정을 배운 고등학교 학생들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대학 선행 학습’까지 유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작년 수능 확률과통계 30번 문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험생의 실수를 유발하는 문제로 꼽혔다.
영어 영역 킬러는 6문제였다. 내용이 추상적인 지문이 많았다. 6월 모의고사 34번의 빈칸 추론 문제는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지식의 차이’라는 서양철학 개념을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지문을 해외 원서에서 가져왔는데, 문장 구조가 공교육에서 다루는 수준을 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 ‘과학자와 예술가의 현실을 추구하는 방법의 차이’에 대한 6월 모의 평가 33번 문제, ‘변호사 수임료 체계’를 다룬 작년 수능 문제 37번 등은 해석부터가 어려운 킬러 문항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영어 지문은 해석할 수 있어도 국어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애초 국어·영어·수학 영역에서만 ‘킬러 문항’을 제시하려 했다. 하지만 수험생들 사이에서 과학탐구 과목에서도 킬러 문항이 많다는 불만이 쏟아져 과학탐구 킬러 문항도 분석해 4문제를 별도로 발표했다. 작년 수능 화학II 20번 문제는 화학 평형(르 샤틀리에 원리)에 대한 내용인데 부피, 온도 등 여러 변인이 동시에 변하는 상황을 제시해 수험생들이 애를 먹었다. 2022학년도 지구과학II 20번 문제는 지구 과학 문제인데 풀려면 수학의 ‘벡터’를 배웠는지가 더 중요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당 영역이 아닌 다른 과목을 배웠느냐 안 배웠느냐가 문제를 맞히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 유형도 수험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킬러 문항이라고 교육부는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