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7일 현 정부의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대해 “킬러 문항을 포함한 수능 부작용과 사교육 문제 심각성은 여야, 보수, 진보 모두 공감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능과 사교육 같은 교육 문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얽힌 굉장히 복잡한 문제로, 여야의 정치적 공방으로는 해결책이 찾아지지 않는다”면서 “‘킬러 문항’을 중심으로 공감대를 갖고 여야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근원적 해법에 대한 확실한 합의책을 내자”고 했다.
조 교육감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수능 ‘킬러 문항’에 대해 “평가 문항은 타당도, 신뢰도, 변별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출제해야 하는데, 변별도만을 고려한 킬러 문항은 학생들에게 끼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대학 입시 준비는 공교육만으로 충분해야 한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교육 개혁의 최소 합의”라고도 말했다.
그는 “야당 역시 ‘킬러 문항 배제’가 대선 공약이었고, 킬러 문항 방지법이 야당 의원에 의해 발의된 상태”라면서 “야당도 정치적 공방 소재로 삼기보다 이를 ‘공통 분모’로 만들어 차분하게 교육 개혁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비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하며 대책 역시 매우 절박하다”고 했다. 그는 “작년 26조원대에 이르는 천문학적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부부가 출산을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라면서 “사교육 문제 해결 없이 저출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들의 불안 속에서 입시 사교육은 팽창해 왔고, 사교육 업계는 시험 유형에 따른 문제 풀이 훈련으로 학생을 내몰았다”며 “학생 발달 단계와 학교 진도를 앞지르는 선행 학습으로 학생들이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기를 기회도 줄었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교육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도 했다. 그는 “심각한 사교육 문제는 현재 여당과 최근까지 여당이었던 야당, 그리고 저를 포함한 어른 세대 전체에 책임이 있다”며 “서울 교육감으로 세 차례나 시민 선택을 받은 저 역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마음이 무겁다. 초등학생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사교육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4년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서울교육감에 당선된 후 지난해 3선에 성공했다. 올해로 9년째 서울의 유·초·중·고교 교육 정책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교육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차분히 접근하자고 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36년을 거치면서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 집권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로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면서 “교육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정치 진영 간 투쟁이나 수사를 통해선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기존 입장을 고집하며 상대를 비난할 근거만 수집하는 논쟁이 아니라, 입장을 바꿔 가며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 개혁을 위한 최소 합의와 합의 확장”도 강조했다.
조 교육감은 수능 5개월 앞두고 ‘킬러 문항 배제’ 같은 정책을 발표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지적도 했다. 그는 “역대 정부는 다양한 사교육 대책을 발표했지만, 많은 경우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문제 하나가 들어가면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오곤 했다”면서 “즉흥적인 대책이 아닌, 긴 시야로 접근하는 종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능을 포함한 교육 문제는 아이들 미래에 깊은 영향을 주는 만큼, 작은 실수도 허용될 수 없고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접근해도 안 되고 적대를 부추기는 방식 역시 위험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교육 대책이 절박하다는 데 공감한다면, 관련 논의는 폭넓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문제는 연금이나 부동산 문제처럼 굉장히 폭발력이 강한 복합적 사안이라 지난 정부는 이 점을 잘 알기에 관리형으로 접근했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해법을 모색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에 비해 현 정부는 사교육 문제에 무모하리만큼 단호히 접근을 한다는 것 자체는 높게 산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여야 정당과 시도 교육감 협의회, 교육부 등이 만나 ‘킬러 문항 방지법’을 먼저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 여당, 교육계 모두 전향적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 대책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좋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수능 제도와 교육 개혁에 대한 전반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수능 제도 전반의 개혁, 그리고 공교육 강화 방안, 나아가 대학 서열 체제 개혁 등 근원적인 교육 개혁을 위한 논의를 하자”면서 “여야, 보수, 진보 입장을 뛰어넘고 각자 교육 개혁의 진정성을 존중하며 만들어가자”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