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이상 남긴 급식 - 지난주 서울 강북 지역 고교에서 한 남학생이 급식 절반 이상이 남아 있는 식판을 퇴식구로 가져가고 있다. 배달 음식에 길들여져 급식을 꺼리고, 다이어트한다며 급식을 안 먹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잔반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지난주 서울 강북의 한 남녀 공학 고교 급식실. 학생 10명 중 2~3명이 식판에 받은 음식을 반도 비우지 않은 채 그대로 잔반통에 버렸다. 삼계탕 닭고기만 대충 발라 먹고, 김치나 참나물 등 반찬과 밥은 손도 대지 않은 학생이 많았다. 이 학교 영양 교사는 “코로나 이후 편식이나 결식하는 학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한식 백반이 나오는 날엔 학생 10% 정도가 아예 급식실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마라탕’ 같은 메뉴도 추가했지만, 여학생은 다이어트 중이라며 급식을 남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최근 바로 버려지는 학교 급식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기간 자극적인 배달 음식 등에 길든 학생들은 “급식은 심심하고 맛없어 못 먹겠다”고 하고 있다. 서울시 초∙중∙고 1인당 연간 평균 잔반량은 2019년 34㎏에서 지난해 38㎏로 12% 가까이 늘었다. 급식 인원이 99만8000명에서 90만명으로 줄었는데, 음식 쓰레기 발생량은 3만4000t에서 3만4200t으로 오히려 늘었다. 경기도 상황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급식 인원이 6만명 줄었지만, 1인당 평균 잔반량(32㎏->36㎏), 음식 쓰레기(5만6000t->6만2000t) 모두 증가했다.

집밥보다 사 먹는 음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급식을 멀리하고 학교는 이를 교육할 분위기가 아니다. 경기 지역 고교 영양 교사 조모(55)씨는 “인근 학교에선 급식 지도를 하다가 먹기 싫은 반찬을 먹게 한다고 ‘아동 학대’로 신고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여학생들은 ‘다이어트’ 때문에 경쟁적으로 급식을 안 먹기도 한다. 교사들은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여학생 상당수가 체중 조절을 이유로 ‘급식 남기기’와 ‘급식 안 먹기’를 시작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감은 “남들과 외모를 비교하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가 보편화하며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려면 뇌에 당류가 필요한데 급식을 안 먹다 보니 젤리나 과자류로 당분을 보충하기도 한다. 급식 밥은 안 먹고, 단것으로 당분을 채우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의 식생활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크게 나빠졌다는 분석이다. 교육부의 학생 건강 행태 조사에 따르면 ‘주 5일 이상 아침 식사 결식률’은 2006년 26.7%에서 지난해 39.0%로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 1회 이상 과일 섭취율’은 같은 기간 최저치인 17.2%로 곤두박질쳤다. ‘주 3회 이상 패스트푸드 섭취율’은 27.3%로 집계됐는데, 이 지표를 조사하기 시작한 2009년(12.1%) 이후 가장 높다.

일선 영양 교사들은 “지금처럼 식단을 짜기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자극적 음식을 메뉴에 넣기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안 넣으면 급식에 손조차 대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고교 영양 교사 정모씨는 “급식은 매번 염도계를 사용해 나트륨을 일정 수준 이하로 맞추는데, 마라탕 등은 기준을 넘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각 시도 교육청은 ‘잔반 줄이기’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짜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부터 ‘K급식 빈 그릇 수호대 챌린지’를 시작했다. 깨끗이 비운 식판 사진을 보내주면 매달 추첨해 상품을 준다. 전북교육청은 ‘AI 푸드 스캐너’를 학교 10곳에 도입해 메뉴별 잔반 데이터를 분석한다. 일부에선 “먹지 않은 급식을 지역 푸드뱅크나 무료 급식소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감하는 학교가 많지만 급식 반출에 따른 식중독 사고를 우려해 기부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