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희(68) 한림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획일적인 수능 점수로 학생뿐 아니라 대학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 우리나라 입시의 가장 큰 문제”라며 “한국의 대학 평가는 학생을 잘 키워 졸업시키는 게 아니라 수능 점수로 이미 결정 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수험생이 선호하는 서울 지역 대학엔 수능 점수가 높은 학생이 몰리니 좋은 대학이 되고, 그렇지 않은 지방대는 저평가되면서 대학 서열화가 고착화한다는 것이다.

최양희 한림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획일적인 수능 점수로 학생뿐 아니라 대학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 우리나라 입시의 가장 큰 문제”라며 “20년 후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학교에서 시험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수 있는데 이런 기술 발전을 고려해 10~20년간 장기 교육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한림대

최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지낸 IT 전문가다. 그는 “20년 후엔 AI(인공 지능)의 발전으로 학교에서 수능뿐 아니라 시험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수 있다”며 “이런 기술 발전까지 고려해 10~20년간 장기 교육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입시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엔 톱(Top) 대학도 있고, 오지에 있는 작은 대학도 있고, 온라인 대학도 있다. 학교는 다양한데 입시에선 수능이라는 획일적 잣대를 다 적용해야 한다. 수능 과목도 단순하고, 그걸 적용하는 방법도 단순하다. 정시, 수시 방법도 나라에서 다 정해준다. 나라에서 정해준 대로 뽑으면 되니까 우리나라 대학은 신입생 선발이 굉장히 편하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학생을 뽑을지 엄청나게 고민하는데,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대학이 다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이 근본적 문제다.”

-지금 입시 제도가 지방대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는 (대학 신입생의) 수능 점수로 대학 랭킹을 매긴다. 톱 대학들은 좋은 학생을 뽑아서 내버려 둔다. 나도 그런 대학을 나왔고, 거기서 교수도 오래 했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런 대학엔 우수한 학생이 들어와서 경쟁하니까 어느 정도 실적도 낸다. 하지만 진짜 좋은 대학은 평균 이하 학생들을 데려다 많이 끌어올리는 것 아닌가. 수능 점수가 중요한 입시 제도에서 수도권대는 좋은 대학, 지방대는 저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점수 높은 인재를 뽑았느냐가 아니라 졸업 후 어떤 실적을 냈느냐를 보고 대학을 평가해야 한다.”

-서울 지역 대학 쏠림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수능 점수라는 하나의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면서 더 심해졌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모두 전국적으로 좋은 대학이 많이 퍼져 있는데 우리는 모두 인(in)서울만 외친다. 수능 줄 세우기 때문에 인서울 대학, 수도권대, 지방대 순으로 랭킹이 이미 정해진다. 지방대가 노력해 성과를 내도 대학 서열은 요지부동일 때가 많다. 각종 대학 평가 기준도 너무 획일적이다. 모든 대학들이 논문만 많이 쓰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혁신 대학 1위’로 꼽히지만 아직 세계 대학 평가에선 100위권 밖에 있다. 그래도 그 대학은 인정을 받는다.”

-미국 대학도 SAT(대입 자격 시험)를 보지 않나.

“미국의 4년제 대학 중 80% 넘는 대학이 이제 SAT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처음엔 코로나로 시험을 못 치니까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 성적, 비교과 활동, 추천서만 봐도 충분히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SAT도 한국 수능처럼 부자일수록 성적이 잘 나와서 차별을 조장하고 학생을 점수로 한 줄 세운다는 비판이 많다.”

-수능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고교생이 30개 과목을 배운다면 수능은 30개를 다 개설하고 학생은 그 중에 10개만 골라서 시험을 보게 하는 거다. 그리고 대학들은 전공 등에 맞춰서 수능 과목과 점수를 참조한다. 그러면 다양한 조합이 나와서 한 줄을 세울 수가 없다. 수능 점수로 전국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세울 필요가 없다.”

-한림대는 수능 성적을 어떻게 활용하나.

“제일 잘한 과목 성적을 70%, 그다음 잘한 과목 성적을 30% 본다. 한 가지만 잘해도 뽑는다는 것이다. 다 잘할 필요가 없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머리를 짜낸 거다. 그런데 한림대만 그렇게 해선 입시가 바뀌기 어렵다.”

-오지선다형 수능이 AI(인공지능) 시대에 어울릴까.

“20년 후엔 시험이 학교 현장에서 필요 없는 시대일 것이다. 모든 수업 과정을 녹화하고 숙제도 다 파일로 저장해서 AI가 분석한다. 학생의 성취도가 얼마인지, 교사는 잘 가르치고 있는지 월말에 평가가 딱 나온다. 기계에 맡겨도 되느냐는 견해도 있지만 AI가 오히려 (사람보다) 더 공정할 수 있다. 또 AI가 학생 개개인의 수업 참여를 살피고 피드백도 주면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진다. 이런 기술 발전까지 생각해서 교육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런 길로 가기 위한 10년, 20년 계획을 세우면 좋겠다.”

-20년 후 정말 그런 변화가 올까.

“10년 전엔 상상도 못 한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보다 변화가 굉장히 빠르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이미 2학기에 첫 번째 AI 교수를 채용하기로 했다. 한림대도 앞으로 10년간 전체 학교 교육의 10~20%는 AI 교수가 맡도록 하려고 한다.”

-’초등 의대반’이 나올 정도로 의대 쏠림이 심한데.

“한림대도 의대가 있다. 변호사를 많이 뽑은 후 직업 만족도가 떨어진 것처럼 앞으로 원격 의료와 AI 의사가 활성화하면 기존 의사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질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학생에게 알려줘야 한는데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한 가지 길만 보여주고 강요하고 있다. 요즘 유튜버나 동물 훈련사도 상당히 높은 수익을 올린다. 긍정적이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70%로 너무 높은 것도 문제다. 선진국처럼 대학 안 나와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입시와 교육 제도가 왜 이렇게 됐나.

“기득권 집단이 자기 주장만 하면서 의견 조율이 안 된다.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이 작동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목소리는 사그라든다. 교육의 중심이 되는 공교육이 약한 것도 문제다.

-대학이 인구 감소, 재정난 등으로 위기다.

“학생이 줄고 등록금을 못 올리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위기는 ‘대학의 대안’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거다. 대학 안 가고도 교육을 잘 받아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많다. 인터넷에도 무크(MOOC·온라인 공개 수업)처럼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넘쳐 나고, 이젠 대기업이 직접 대학도 운영한다. 대학이 가진 유일한 권한이 ‘학위’ 주는 건데 그것도 안 보는 기업이 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MIT 박사라도 ‘이 문제 풀어보라’는 1시간짜리 인터뷰를 사람 바꿔가면서 7~8번씩 한다. 그걸 통과하면 졸업장 없어도 합격시킨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이 늘고 있다.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최양희 총장은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석사를, ENST 프랑스국립정보통신대학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IBM 왓슨연구소 방문 과학자를 지냈고, 1991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했고,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맡았다. 2021년 9월부터 한림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