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남 거창군의 경남거창도립대학 캠퍼스에선 ‘소나무 가지치기’ 실습이 한창이었다. 교수가 “정원의 모양에 맞게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자, 이 학교 ‘스마트귀농∙귀촌학과’ 학생들은 전지 가위를 들고 소나무를 이리저리 자르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 인근의 스마트팜을 찾아 망고∙바나나∙구아바 등 열대 과일 재배를 관찰했다. 이 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60대다. 모두 제2의 삶을 꿈꾸는 만학도(성인 학습자)다.
경남거창도립대학은 학령 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자 2021년 ‘스마트귀농∙귀촌학과’를 만들었다. 2년 동안 식재∙정원 설계∙가지 치기 등 조경과 원예 기술을 가르친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은퇴자들 사이 소문이 나며 수도권 지역에서도 학생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주중에는 온라인으로 이론 강의를 하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진 학교에서 나무 옮겨심기∙캐드(CAD) 도면 그리기 등 실습을 한다. 이 학과 1학년생인 거창 주민 노충환(60)씨는 “동기 20 여명 중 절반 정도는 외지인인데, 실습 때마다 몇 박씩 거창에 머무르는 분도 많다”고 했다.
만학도 학과 등을 설치해 ‘평생교육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전문대의 만학도 신입생은 2016년 1만9700명에서 작년 3만2700명으로 66% 증가했다. 4년제 대학도 마찬가지다. 4년제 대학의 ‘만학도 전형’ 정원도 2019학년도 793명에서 2024학년도 2589명이 돼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방대뿐 아니라 서울 지역 사립대도 동참하고 있다.
귀농학과는 교양 과목으로 ‘텃세 극복 방법’도 가르친다. 도시 출신 수강생을 위해 농촌 생활의 특징을 강의하는 것이다. 중장년 수강생이 어려워하는 파워포인트(PPT)와 엑셀 수업도 있다. 귀농을 하면 각종 지원 신청서를 작성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 학과는 24명인 정원을 내년 34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학교 전체 정원의 10%가 귀농학과 학생이다.
경북 경산의 대구한의대는 청도군과 협약을 맺고 ‘청도 인적자원개발 학과’를 만들어 하반기부터 만학도 신입생을 모집한다. 청도 군민만 입학할 수 있다. 4년 동안 ‘청도학’을 수강하며 지역 역사와 특성을 공부하고, 인구 소멸과 환경 오염 등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세미나도 진행한다. 지역 공무원과 이장 등이 주 대상이라고 한다. 충청북도는 청주의 서원대와 충주의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와 협약을 맺고 만학도를 위한 ‘5080 인생학교’를 만들 예정이다. 약 30명의 만학도가 모여 자신의 경험과 전문 지식을 동료에게 가르치는 방식이다. 충북은 인생학교 학생들과 지역 대학의 취업∙창업 프로그램도 연계할 계획이다.
교육부도 대학들의 평생교육과정 확대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만학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에 지원금을 주는 ‘대학의 평생교육 지원사업(LiFE 2.0)’의 올해 지원 대상을 30곳에서 50곳으로 늘렸다. 평균 지원금도 7억8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증액했다. 지역 특화 산업 학과를 만드는 지역 대학도 지원한다. 강원∙경북∙전남∙전북∙충북 등 5개 광역지자체별로 지역 대학 2곳씩을 선정해 만학도 인재를 육성할 계획이다.
/거창=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