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장제국 부산 동서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입시에 대학 자율이 없으니 대학이 수능 점수에 의지하는 것”이라며 “이제 정부가 대입을 주도하는 ‘개발도상국형 입시’에서 벗어나 대학이 자율적으로 뽑는 ‘선진국형 입시’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 총장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장 총장은 “수능 ‘킬러 문항’ 논쟁은 서울 일부 대학에만 해당한다”며 “미달 사태가 나는 지방 대학들은 수능도 안 보는데 (수능 개혁은) 사실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 대학은 지역 소멸을 막는 ‘마지막 저수지’로 육성하되, 한계 대학은 문을 닫을 수 있게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수능 ‘킬러 문항’을 없애면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는데.
“킬러 문항 배제는 매우 당연하고, 잘한 조치다. 사교육 받은 사람만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오면 공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가 무너지는 거다. ‘킬러 문제’ 변별력은 진짜 변별력이 아니다. 사교육 혜택을 못 받은 사람에 대한 심각한 차별에 불과하다. 교육이 공교육 중심으로 이뤄지고, 사교육이 돈만 들고 별 필요 없다는 게 피부로 느껴져야 사교육이 없어진다. 대학도 입시에서 ‘사교육형 인재’는 배제해아 한다.”
“수능, 자격 시험으로 전환 바람직”
-수능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우리는 정답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정답 찾는 훈련을 고교 3년 내내 하는 건 맞지 않는다. 수능은 기초 지식을 측정하는 자격 시험으로 전환하고, 1년에 4번 정도 보게 해서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내에 언제든 자격을 얻게 하면 좋겠다. 그러면 고교 교육도 창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개편될 것이다. 지금은 고등학교가 ‘이렇게 교육했으니 여기서 선발하라’고 한다. 앞으로는 대학이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이 이것이니 고교에서 이런 인재를 양성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럼 고등학교가 변하고, 중학교까지 파급이 있을 것이다.”
-대입은 어떻게 바꿔야 하나.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못 뽑으니까 수능 점수에 의지한다. 개발도상국일 때는 정부가 대입을 관리하는 게 맞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대학마다 연구나 예체능 중심 등 특성이 다 다르지 않은가. 요즘 입시 부정을 저지를 정도로 과감한 대학은 없다. 수능 성적만으로는 어떤 학생인지 알기 어렵다.”
“한계 부닥친 지방대에 퇴로 열어주길”
-지방대 입시 상황은.
“지방은 학생이 없어서 미달 사태가 나고 있다. 수능을 안 보는 대학도 많기 때문에 수능 개혁 논의가 별로 의미 없다. 킬러 문항은 서울에서도 일부 대학만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수도권 집중 현상이 너무 심하다. 대학 등록금은 15년간 동결되고 지방엔 학생도 없다. 그러니 지방이 피폐해지는 거다. 대학마저 없어지면 지방은 소멸한다. 진짜 마지막 저수지다. 경쟁력 있는 지역 대학에는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한계에 부닥친 지방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문을 닫길 원하는 대학도 있다. 그들이 문을 못 닫는 건 퇴로가 없기 때문이다. 퇴로를 마련해주는 법을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이른 시일 안에 관련 법이 통과되면 스스로 나가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한국은 서울 소재 대학 쏠림이 심한데.
“(지방대가) 고1 대상 대학 설명회에 가면 아무도 관심 없다. 모두 목표가 서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2학년 올라가면 자기 현실을 알고 다른 어떤 대학이 있나 관심을 갖는다. 일본만 해도 모두 도쿄대 간다는 생각은 안 한다. 얼마 전 일본 방송에서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봤다. 한 청년이 잘 들어보지 못한 지역 대학의 학생이라고 말하며 ‘졸업하면 이 지역에서 뭘 하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더라. 우리와는 인식이 참 다르구나 싶었다. 우리도 학생 개인이 타고난 재능을 키워주기에 가장 적당한 대학이 어딘지 보는 쪽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방 대학을 나와도 취업은 서울로 한다.
“우리나라 일자리 49.7%가 서울에 몰려 있다. ‘취업 남방 한계선이 판교’라는 농담도 있다. 균형 발전이 안 돼서 그렇다. 부산 지역 대학에도 최첨단 분야 전공이 많지만, 지역 산업체는 제조업 중심이다. 불일치 현상이다.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됐는데 국민에게 무조건 눈높이를 낮추라는 건 무책임하지 않은가. 국토 균형 발전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교협이 ‘소규모 지방대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는데.
“지방 소규모 대학을 육성할 방법을 찾고 있다. 두메산골에서 종교인을 양성하는 대학 총장님이 지역 대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가슴에 와 닿았다. 응급차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그 대학 출신이 교회 담임 목사를 하고 있다. 한 할머니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그 목사가 할머니를 등에 없고 응급차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총장이 ‘두메산골에서 일하는 사람은 결국 지역 대학에서 나온다’고 하더라. 지방대가 없어지면 사람이 없어지고 지역은 소멸한다.”
“규제 철폐한다면 혁신 대학 나올 것”
-한국도 대학 규제를 완화하려는 분위기다.
“세계적 혁신 대학이 미네르바대와 애리조나주립대다. 우리 대학도 그 대학을 보러 많이 갔다. 하지만 지금까진 ‘그림의 떡’이었다. 대학 규제가 너무 심해서 외국처럼 대학을 운영하는 게 불법이었다. 교육부는 출석 부르는 것까지 간섭하지 않았나. 새로운 걸 하려면 일일이 교육부에 물어보고 했다. 세계적 수준으로 규제를 철폐한다면 (한국에서도) 혁신적 대학들도 나올 것이다.”
“경쟁력 위해 등록금 자율화해야”
-등록금 규제가 여전한데.
“15년간 물가를 관리한 건 등록금밖에 없을 거다. 15년간 교수 월급도 다 동결됐다. 등록금 동결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학문 후속 세대가 없어졌다. 대학이 여력이 없으니 교수를 못 뽑고, 어렵게 박사 학위 받아도 취직할 데가 없으니 이제 공부를 안 하려 한다. 미국에서 박사를 받으면 현지에 있지 한국에 안 온다. 이제 대학 경쟁력을 위해 등록금 규제를 풀어야 한다. 등록금을 자율로 한다고 해서 학생도 없는 상황에서 등록금을 많이 올릴 대학도 많지 않다. 학생도 없는데 등록금까지 올리면 애들이 오겠나.”
-남은 초·중·고교 예산을 어떻게 해야 하나.
“동생(초·중·고)과 형(대학)으로 구분하지 말고, 초중고 예산 중 상당 부분 남는 게 있으면 대학 교육으로 돌려서 아이를 같이 키운다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결국 초·중·고생이 대학에 가지 않나.”
-대학은 많은데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데 ‘얘는 지방대 나와서 안 된다’는 식의 배제 논리로 보니 사람이 없는 거다. 특수 분야를 빼면 전국 어느 대학을 나와도 그 분야에서 일할 기본 잠재력은 갖췄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학벌보다 잠재력을 중시해서 뽑아야 한다. 그런 학생이 성공하는 사례를 자꾸 보여주면 사회 인식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장제국 대교협 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학·석사를 딴 후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법학 박사, 일본 게이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부산 동서대 교수로 재직했고, 2011년부터 동서대 총장을 맡고 있다. 지난 4월 국내 4년제 대학 198곳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