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교육지원청 학교 폭력 화해중재단 위원들이 안성초등학교 교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찬구(53), 오소희(43), 임종철(59), 문형주(50), 박상철(53) 화해중재위원. /오종찬 기자

경기도 안성교육지원청은 작년 3월 학교폭력(학폭) 화해중재단을 전국 처음으로 만들었다. 전·현직 교사, 학부모, 변호사 등 35명으로 구성한 학폭 해결 전담 조직이다. 학폭 사건은 대부분 해당 학교의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에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 학생 측과 피해 학생 측이 다시 갈등하고 학교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가해 학생이 다시 학폭을 저지르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안성교육청은 학폭 사건을 교육청에서 직접 조사하고 학생 간 화해를 돕기 위한 중재단을 만든 것이다.

안성교육청 화해단은 지난해 275번의 학폭 사건을 중재했다. 가해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학교 학폭위로 가지 않고 해결한 학폭 사건이 전체의 73%다. 올해는 이 비율이 87.5%까지 늘었다. 특히 중재 이후 가해 학생이 다시 학폭을 저지르는 재발률은 ‘0%’라고 한다. 이전 안성시의 학폭 재발률은 17.5%였다. 안성교육청의 화해중재위원 5명을 만나 학폭 해결의 실마리를 물었다.

학폭이 발생하면 중재단은 최대한 빨리 가해·피해 학생 측을 따로 만난다. 시간이 지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양측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초·중·고에 따라 전문성을 가진 위원을 배정한다. 학폭을 은폐하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면담엔 학부모도 동석한다. 이후 화해 방법을 제시한다. 화해 의사가 있으면 가해·피해 학생 측 만남을 주선하고 화해 합의문을 쓰게 한다. 가해 학생이 재발 방지를 약속할 땐 본인이 직접 피해 학생에게 말하도록 한다. 화해 이전까지 가해·피해 학생은 직접 대화하지 않고 중재위원의 질문에만 답한다.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듣게 해 서로 입장을 이해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이해 관계가 얽히는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 다리를 놓기 때문에 중재 결과를 받아들이는 비율도 높다는 분석이다.

그래픽=백형선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정찬구(53) 중재위원은 “처음엔 분노에 차서 가해 학생의 처벌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몇 차례 얘기를 주고받으면 처벌보다 ‘재발 방지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해 학생도 사과하는 방법을 몰라 오해가 깊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학폭 사건 이후에도 가해·피해 학생이 학교에서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많은 만큼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학부모인 문형주(50) 위원은 “학폭으로 피해 학생이 성형수술까지 한 사건이 있었다”며 “그러나 피해 학생 측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니 격앙된 감정이 누그러지면서 가해 학생의 사과를 받아주더라”고 했다. 그는 “학폭은 처벌이 아닌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중재위원들은 화해 과정이 학생들의 교육적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종철(59) 평택 비전고등학교장은 “학생들은 부모를 통해 화해하는 법과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배운다”며 “화해를 중재하다 보면 부모들도 절차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하게 되는데,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중재 과정을 통해 학생도 갈등 해결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위원들은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도 학폭과 관련한 인식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학부모가 학생 간 가벼운 다툼도 학폭으로 신고하고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상철(53) 안성 죽화초등학교장은 “학부모부터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학생 간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해중재단이 교사들의 ‘기피 0순위’인 학폭 업무를 전담하기 때문에 일선 교사를 무분별한 민원과 소송에서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학폭 신고 사안 중 대부분은 바로 화해가 가능한 경미한 사안인데도 조사 과정에서 학폭 담당 교사들이 아동학대 등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안성교육지원청 이정덕 장학사는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면 수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직위해제까지 될 수 있다 보니, 교육청이 학폭 업무를 맡은 이후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교사와 학생 간 벌어지는 교육 침해 사안도 중재를 시작했다. 1학기 동안 20건의 교권 침해 사안을 중재했다. 이 장학사는 “학교 구성원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화해중재의 지원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