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한균태(68) 경희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이제 좋은 대학 나왔다고 월급 더 받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이런 사회 변화를 인식하고 수능 점수 1점 올리려고 비싼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입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초등학교 입학생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미래 직업을 갖게 된다”면서 “반복·암기 학습이 아니라 AI(인공지능)에 대한 이해와 감성지능(EI)을 두루 갖추도록 교육 방식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수능 자체다. 수능은 공정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어릴 때부터 수능 점수 올리려고 학원을 엄청나게 다니니까 학교에선 80%가 잔다. 학원에서 다 배우니 학교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수능 때문에 공교육이 황폐화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대입 전형별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수능 위주 정시 입학생의 중도 탈락률이 수시 입학생보다 2배 이상 높고, N수생 비율은 70%에 달하고 국가장학금 수혜율은 19%로 매우 낮다. 학업 성과도 안 좋다. 이미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반수’를 생각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학생, 대학, 국가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대입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수능을 입시 기준으로 삼도록 강요하는 정부 정책이다. 수능을 중시하는 학교도 있지만 경희대처럼 학업 역량, 생활 자세, 인성 등을 평가하고 싶은 학교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년 40%씩 수능 점수로 뽑아야 한다. 획일화한 기준을 대학에 강요해선 안 된다. 190개 4년제 대학 중 80%가 사립대학이다. 최소한의 공통 기준을 마련한 후 대학이 인재상에 맞게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게 해야 한다. 대학도 특성화를 통해 학생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최상위 대학 학생들이 줄줄이 학교를 그만두는 건 의대에 대한 갈망도 있지만 그만큼 그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 사교육비 총액이 26조원으로 최고 수준이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가장 확실한 방법이 표준화한 입시 제도를 해체하는 것이다. 수능이라는 동일한 잣대로 학생을 줄 세우니 그걸로 대학 서열이 매겨지고, 학생들은 점수 1점을 올리기 위해 반복 학습하고 재수, 삼수한다. 소수의 상위권 학생 변별을 위해 대다수 학생이 실패자가 된다. 불행한 ‘줄 세우기 대입 제도’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다. 사실 대한민국 상위권 대학은 대학이 좋아서 우수한 학생이 입학하는 것이 아니고, 입학하는 학생 점수가 대학 수준을 결정한 것이다. 수험생을 한 줄 세우는 이런 구조를 깨야 한다. 수능은 학교 공부만 잘 따라가면 풀 수 있게 출제하고 대학 자격고사 정도로만 활용하면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집중하게 되고 공교육도 살아날 것이다.”
-그래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들은 여전히 있을 것 같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월급 더 받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도 역량 보고 뽑지, 대학 보고 안 뽑는다. 인턴 제도가 보편화되고,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에선 대학 진학률까지 떨어지고 있다. 굳이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학 안 가도 온라인에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3차 산업 사회까지는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 다니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대학 때 배운 지식이 평생 안 간다. 이미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지금 초등학생의 65%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다’고 전망하지 않았나. 부모들이 이런 점을 인식하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학부모의 인식 전환을 강조하는데.
“요즘 애들이 학원을 하루 3~4개씩 다닌다. 공부하는 기계가 될 판이다. 그게 다 학부모 욕심이다. 공부를 잘하는 애가 있고, 다른 재능 있는 애가 있다. 그런데 부모가 자꾸 공부 못하는 애를 잘하게 만들려고 학원에 보낸다.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데, 못하는 걸 잘하게 하려는 거다.”
-초등생 사이에서도 ‘의대 열풍’이 분다.
“앞으로 ‘영상 해독’ 같은 의사 일 상당 부분은 인공지능(AI)이 다 할 거다. 이렇게 기술이 급변하는데, 부모들은 아직도 옛날 생각해서 의대 보내려고, 문제 하나 더 맞히게 하려고 학원 보낸다. 애는 스트레스받고, 사교육비는 너무 많이 든다.”
-지금 학생들은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하나.
“AI(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거기에 EI(Emotional Intelligence·감성 지능)를 접목해야 한다. EI는 본인이나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EI가 높아야 사람들 마음을 읽고 이끌 수 있어 리더가 될 수 있다. AI에 EI를 갖춘 인재를 ‘확장된 지능(extended intelligence)’을 갖췄다고 한다. EI를 키우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도 중요하다. 요새는 창업하려는 학생들이 많다. 창업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이제 대학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나.
“대학들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대표적인 게 ‘학생 설계 전공’ 제도다. 경희대는 학생이 60학점 정도를 스스로 짜서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전공을 만들면 심사를 거쳐 인정해준다. 올해부터 학과 구분 없이 뽑아서 2학년 때 원하는 학과를 선택하는 광역 모집 단위도 신설했다. 100% 학과 선택권을 준다. 1학기 공부해보고 2학기에 학과를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도 있다.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사회 진출에 전공 지식 말고 비(非)교과도 중요하기 때문에 비교과 프로그램도 학년별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인데, 100위권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가 경쟁력이 커지는 동안 대학 경쟁력이 제자리걸음을 한 것은 대학의 손발을 묶어 놨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국내 총생산은 62% 증가했는데, (정부 규제로) 대학등록금은 15년째 동결이다. 교육 예산 중 고등교육 예산은 13%(13조원)밖에 안 된다. 규제도 첩첩산중이다. 외국 기업 연구소를 유치하려고 알아봤는데 정부 부처, 지자체별 규제의 늪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자체 개혁도 요구된다.
“대학 혁신 속도가 기업에 비해 느린 게 사실이다. 인공지능 ‘챗GPT’한테 대학 교육 과정에 대해 질문했더니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답하더라. 일정 부분 공감된다. 우리 산업이 이미 선진국형으로 바뀐 만큼, 대학 교육도 혁신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 구성원들이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 교수도 이제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학생을 이끄는 멘토,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 유니콘을 꿈꾸는 앙트레프레너(기업가) 등 ‘1인4역’ 이상을 담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