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교재 집필진이 수능 출제 위원인 것처럼 꾸며 홍보하는 등 거짓·과장 광고를 일삼은 9개 사교육 업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에 착수했다. 메가스터디·시대인재 등 대형 입시 학원과 상상국어평가연구소·이감 등 수능 모의고사 출판 업체가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이들 9개 업체의 19개 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 보고서를 위원회에 상정하고, 각 업체에 보냈다고 4일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7월 교육부 ‘사교육 이권 카르텔 신고 센터’에 접수된 허위·과장 광고 등 불법 혐의 제보를 넘겨받아 조사를 진행해 왔다.
공정위 조사에서 적발된 19개 부당 광고 혐의 중 7개(5개 업체)가 ‘수능 출제 위원’과 관련이 있었다. 학원들은 교재 집필진이나 강사들이 수능 출제 경력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거짓 광고를 하거나, 수능 검토 위원이나 일반 모의고사에 참여한 경력을 모두 ‘수능 출제 위원’이라고 과장 광고했다가 적발됐다.
업체들 중에는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은밀한 관계”라고 광고하거나 “지역 내 업계 유일 수능 출제 위원”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업계 유일’의 근거에 대해 공정위가 묻자 이 학원은 “다른 학원은 홈페이지에 수능 출제 위원 경력이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애초 수능 출제진 참여 여부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수능 출제진은 참여 사실과 출제 과정에서 얻은 지식 일체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으며, 발설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서약을 한다. 그런데 이를 어겼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 활용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사교육 입시 업체나 강사들이 수능 출제 경력을 속이거나 과장해서 광고하는 것은 실제 수능과 비슷한 문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줘야 교재를 많이 팔고 수험생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합격생 수 업계 1위” “학원 수강생 최다”라는 식으로 홍보했다가 적발됐다. 공정위가 1위라고 홍보한 근거를 요구했는데 내놓지 못했다. 특히 시대인재는 ‘의대 정원 절반이 시대인재 출신’이라는 취지로 광고했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설 업체의 합격 커트라인 성적에 따라 학원 수강생들이 모두 의대에 지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를 마치 실제 합격한 것처럼 광고했다는 것이다.
일부 학원은 의·치·한의대에 합격하거나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인서울(서울 내 주요 대학)’ 등에 합격하면 수강료를 전액 환불해 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단순 합격이 아니라 해당 대학에 등록해야만 수강료를 환불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원에는 “왜 수강료를 돌려주지 않느냐”는 민원도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각 학원이 부당 광고로 벌어 들인 관련 매출액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부당 광고 행위에는 관련 매출액의 2% 이내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공정위는 앞으로 4주간 이들 업체로부터 심사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받은 후 전원회의를 열고 사건을 심의한다.
한편 전직 교육부 관료와 현직 교대 부총장이 사교육 업체 임원을 맡고 있어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이날 한반도선진화재단과 교육데이터분석학회가 공동 주최한 ‘2028 대입 개편 방향 어디로 가야 하나’ 세미나에서 “2009년 교육부에서 학교본부장을 지낸 이모씨와 모 교대의 이모 부총장이 사교육 업체 임원을 맡고 있다”며 “입시 업체와 현직 고교 교사 관계만 ‘사교육 이권 카르텔’이 아니라 정부 정책과 공교육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직 교육부 관료나 교수들이 업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