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수능 시험이 치러진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선 82세 김정자 할머니가 도전에 나섰다.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응시자의 연령 정보를 별도로 공개하지 않지만 1941년 태어난 김 할머니가 최고령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 할머니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난생처음으로 수능 시험장이라는 데를 들어가 보니 가슴이 ‘찡’하더라”며 “젊었을 땐 가난해서 (대학 입학은) 꿈도 못 꿨다”고 했다. 이어 “이 나이에 수능을 보는 것만도 큰 영광”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수능 직후 “국어와 한국사는 공부한 내용이 나와 문제를 읽고 푸는 보람이 있었는데 영어가 정말 어려웠다”며 “숙명여대에 입학해 영어를 공부하는 게 앞으로의 꿈”이라고 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8남매 맏딸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대신 6·25 전쟁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한글 공부도 제대로 못 했다. ‘대학’은 꿈같은 단어였다. 결혼 후 3남매를 키웠다. ‘손톱이 닳고 빠지도록 일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2018년 만학도들이 한글을 공부하는 양원주부학교에 진학했다. 지각도, 결석도 없이 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뗐고, 일성여중고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갔다. 구부정한 몸을 이끌고 매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서 학교까지 지하철과 도보로 이동했다.
대학에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꿈은 미국에 사는 큰딸과 손자·손녀 때문에 품게 됐다. 김 할머니는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알지 못해 대화가 잘 안 통한다”며 “영어를 배워 큰딸을 만나러 혼자 미국에 가보고 싶고, 손자·손녀와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눈으로 보고 직접 응원해주고 싶어 수능에 욕심을 냈다”며 “대학에 진학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죽을 때까지 연필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