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지난 2월 아이가 ‘선거 규정 위반’으로 전교 부회장 당선이 취소되자 학교를 상대로 ‘민원 폭탄 작전’을 시작했다. 6개월에 걸쳐 학교를 상대로 고소·고발 7건, 행정심판 8건, 정보 공개 청구 300여 건을 쏟아냈다. 아이에게 당선 취소 서명을 강요했다며 교장과 교감을 ‘아동 학대’로 고소했다. ‘학교 예산 및 카드 사용 내역’ ‘학교 담당 장학사 이름, 출장 내역, 연수 기간’ 등 선거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용에 대해서도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국민 신문고에는 관할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민원 24건을 냈다. 28일 서울시교육청은 A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서울 초등학교 교사 사망 이후 교육청과 일선 학교가 악성 민원을 쏟아내는 학부모를 직접 고발하는 등 강경 대응하고 있다. 대충 넘어가던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앞서 지난 24일 서울교육청과 교육부는 지난 수능에서 자녀가 부정행위자로 처리되자 수능 감독관이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가 1인 피켓 시위를 벌인 학부모를 고발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과거 “교사가 어떻게 학생과 학부모를 고발하느냐”며 훈육이나 대화 등 교육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교사들이 법적 대응으로 학부모 ‘갑질’에 맞서고 있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A씨 자녀는 전교 부회장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다른 후보들이 ‘선거 운동 규칙을 어겼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학교는 A씨 자녀가 정해진 유세 시간을 초과해 선거 운동을 하고, 토론 규칙을 위반했다는 내용을 파악한 뒤 학교운영위원회 결정을 거쳐 당선을 취소했다. 그러자 A씨는 학교에 민원을 쏟아냈다. 학교를 찾아가 교직원을 상대로 폭언했고, 지역 맘 카페에 ‘교감이 특정 시설 업체 선정에 관여했다’는 허위 사실을 올리기도 했다.
A씨가 낸 고소·고발 7건은 수사가 진행 중인 1건을 제외하고 대부분 ‘혐의 없음’ 결정이 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무분별한 민원으로 학교 행정이 마비될 정도였다”며 “학교와 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를 거쳐 A씨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A씨 자녀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상태다.
다른 교육청도 교권 침해에 대해 강도 높게 대응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자녀에게 수업 내용을 녹음하라고 한 뒤 학부모 모임에 배포하고, 교사에게 ‘성격 파탄자’ 등 모욕적인 말을 한 파주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앞서 경기교육청은 신임 초등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의정부 한 초등학교 학부모 3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 8월까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열린 교권보호위원회는 6501건이었지만, 고발로 이어진 경우는 13건(0.2%)에 그쳤다. 교육 당국이 교권 보호에 소극적이었다는 의미다.
교사 개인이 악성 민원인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거나, 교원단체를 통해 고발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인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의 목을 조르고 욕을 한 학부모에게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됐는데, 피해 교사는 인천교사노조의 도움을 받아 2년 동안 소송을 했다. 초등 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선 “더 이상 교사들은 참지 않습니다”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선 교사가 교권 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봄이 경기교사노조 교권보호국장은 “악성 민원이 법적 문제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학교장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아직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