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국민대 운동장에서 ‘소방 드론’ 10여 대가 날아올랐다. 산림환경시스템학과와 임산생명공학과 석·박사생 10여 명이 드론으로 산불 진압 연습을 하면서 인명 수색 방법도 익혔다. 1~2m 크기의 소방 드론이 10m 상공에서 소화액을 뿌리자 연막탄의 연기가 잦아들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 운동장에서 산림환경시스템학과와 임산생명공학과 석·박사생 10여 명이 소방 드론의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국민대는 2019년부터 '산림과학 전문 인력 양성 과정'을 도입해 재난과 기후 변화 전문가를 키우고 있다. /국민대

두 학과는 2019년부터 재난과 기후 변화 전문가를 키우고 있다. 2016년까지 ‘삼림과학대학’에 속했을 때는 인기가 높지 않았다. 교내에선 “1차 산업을 왜 서울시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과학기술대학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정원이 줄며 사라질 위기까지 맞았다. 그러자 두 학과는 변신을 택했다. 조림·생태학 등 종전 과정을 줄이고 기후 변화와 재난 대처에 집중했다. 2019년 대학원에 ‘기후 변화 전문가’ 과정을 만들었다. 올해부터 경북 안동시에 있는 연구 숲에서 ‘탄소 감축 연구’를 본격화했다.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방법을 개발해 기업에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한 해 4~5명이던 대학원 진학자가 20명으로 늘었다. 차별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입시 경쟁률도 크게 올랐다. 2016년 수시의 경우 7.7대1 정도였는데 올해는 25대1(산림환경시스템)과 31대1(임산생명공학)을 기록했다. 3배 이상 뛴 것이다.

과거 비인기 학과들이 생존을 위해 기존 과정을 완전히 바꾸면서 인기 학과로 역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문계나 기초 학문에 AI(인공 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접목하거나 기후 위기 등 전 세계적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 인재 양성 과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학과 구분 없이 신입생을 뽑은 뒤 전공을 고르게 하는 학제를 확대하려고 한다.

국민대 수학과는 2017년 ‘정보보안암호수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종전에는 기하학 등 순수 수학만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은 ‘난수 생성이론’ ‘암호 프로토콜’ 등을 개설해 암호·보안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 졸업생은 교원이나 학원 강사로 갔다. 요즘은 보안 관련 연구기관과 국가정보원, 통신업체 등으로 진출했다. 30%대이던 학과 취업률이 70%대로 올랐다. 대학원 진학자도 3배로 늘었다고 한다. 국민대 관계자는 “저출생으로 학령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학도 변하지 않으면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외대는 올해 서울캠퍼스에 ‘언어(Language) 및 AI 융합학부’와 ‘사회과학(Social Science) 및 AI 융합학부’를 신설했다. ‘문송(문과라 죄송)’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문계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갈수록 수요가 많은 AI(인공지능) 기술을 가르쳐 위기를 넘겠다는 것이다. ‘언어 및 AI 융합학부’의 경우 자동 통·번역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언어 데이터 처리 기술을 가르친다. 올해 수시 논술에서 133대1의 경쟁률로 한국외대 최고를 기록했다. 가천대는 기존 인문대학을 ‘AI 인문대학’으로 바꿨다. 학과 수업의 3분의 1을 AI 관련으로 채울 계획이다. AI를 활용해 문학 작품을 분석하거나 교육 콘텐츠 등을 개발하도록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최근엔 인문학 연구에도 디지털·AI 기술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학과 과정은 그대로 둔 채 이름만 그럴듯하게 바꾼 대학이나 학과도 적지 않다. 입시업체 유웨이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이름을 바꾼 학과는 550여 개에 달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학과 이름에 수험생들이 친숙한 단어만 넣어도 경쟁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포장지만 바꾼 것인지, 교과 과정을 통째로 손본 것인지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