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국어·수학·영어 모두 어려웠던 것으로 7일 발표됐다. 공교육 과정을 벗어난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까다로운 문제가 많이 출제돼 최상위권 변별력 논란은 없을 전망이다. 전 과목 만점자는 재수생 1명이었다.

이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수능 채점 결과를 보면, 국어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은 전년보다 16점 오른 150점으로, 가장 어려웠다는 2019학년도와 같았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시험이 어려울수록 올라간다.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이 150점까지 오른 것은 현재와 같은 수능 체제가 시행된 2005년 이후 두 차례뿐이다. 올해 국어 만점자는 64명(0.01%)으로 작년 371명(0.08%)보다 크게 줄었다.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도 고난도였던 전년 수능(145점)보다 3점 높은 148점이었다. 영어의 1등급 비율도 4.71%에 그쳤다.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를 도입한 2018학년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래픽=김의균

올해처럼 국·영·수 전 과목이 전부 어렵게 나온 경우는 이례적이다. ‘킬러 문항’ 없이 변별력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 역대 가장 많았던 N수생 규모, 코로나 기간 학력 손실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 정부는 학원에 가야만 풀 수 있는 ‘킬러 문항’을 올해부터 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자 수험생들 사이에선 “킬러 문항을 갑자기 없애면 최상위권 변별을 어떻게 하느냐”는 의문이 쏟아졌다. 너무 쉬워 만점자가 쏟아지면 최상위권 학생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교육부는 대다수 학생들이 손도 못 대는 ‘킬러 문항’ 1~2개를 출제하는 방식으로 최상위권을 변별해왔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안 내도 공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어렵게 출제할 수 있다”며 “‘쉬운 수능’이란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입시에선 수험생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물수능’(쉬운 수능)이 ‘불수능(어려운 수능)보다 더 문제로 꼽힌다. 올해는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너무 쉬운 문제를 내면 ‘변별력 실패’라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변별력 확보에 과도한 신경을 쓰면서 예상보다 더 어렵게 출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제진은 “사고력을 측정하는 까다로운 문제들을 냈다”고 했다. 특히 국어 영역은 푸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수험생들이 많았다.

지난달 17일 대구 수성구 정화여고에서 3학년 학생들이 전날 치른 수학능력시험 가채점을 하고 있다. 이번 수능에선 공교육 과정을 벗어난 '킬러 문항'이 나오지 않았지만, 국어·수학·영어 모두 까다로운 문제가 많아 최상위권 변별력 논란은 없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수능 출제진이 ‘N수생 실력’을 과대평가했다는 평가도 있다. 올해 수능 응시생 중 N수생·검정고시생 비율은 1996년 이후 가장 많은 35%를 기록했다. N수생의 수능 점수가 고3보다 높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수능 출제 때 N수생 규모를 감안하곤 한다. 출제진은 그해 모의고사 성적으로 수험생 실력을 가늠한다. 그런데 모의고사는 N수생이 치지 않을 때가 많아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올해 재수생은 코로나 때 고등학교를 다녀서 학력이 좀 떨어질 수도 있는데 모의고사에서 이런 걸 파악하지 못하면 수능 난이도 조절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6월 모의고사부터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적용하려 했다. 그런데 실패했고 담당 간부가 경질되기까지 했다. 결국 수험생들은 9월 모의고사를 쳐본 후에야 ‘킬러 문항 없어도 변별력 있다’는 새로운 수능 유형을 접했다. 수능 시험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새 유형에 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에선 ‘킬러 문항’이 없어도 시험이 매우 어려우면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안한 학부모들이 학원으로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사교육 유혹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정부는 공교육 과정에서 수능을 출제하고 EBS를 통해 대비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정보를 제공해서 그런 사교육 유혹을 끊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