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서울 강남 한 호텔에서 ‘일본 약대·치대·수의대 유학 박람회’가 열렸다. 일본 지방 사립대의 약대 6곳과 치대·수의대 각각 1곳이 교수 등을 보내 입학 상담을 하는 자리였다. 일본 약대 교수들은 “한국인 졸업생 11명 중 6명이 한국의 약사 국가시험을 통과했다” “지금까지 한국 유학생 35명이 졸업했고, 21명이 일본 약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고 선전했다. 학부모들은 “올해 수능에서 수학이 3등급인데 들어갈 수 있나” “중도 포기 유학생은 얼마나 되나” 등을 물었다. 이날 상담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이 150여 명이다. 일본 약대의 1년 학비가 우리 돈 2000만원이지만, 학부모들은 “재수하면 한 달에 500만원”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의대 계열은 물론 약대의 입시 경쟁도 달아오르자 해외 약대로 눈을 돌리는 학생이 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약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약사 자격시험을 치려는 것이다. 해외 의대처럼 약대도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외국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국내 약사 시험을 칠 수 있다. 국내 약대에 입학하기 어려운 수능 2~3등급 수험생들의 문의가 많다고 한다. 국내 약대 정원은 2024학년도 기준 1743명이다. 의대 정원 3058명보다 적다. 올해부터 국내 약학전문대학원도 없어지기 때문에 약사가 되려면 N수를 하거나 편입해야 한다.
12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해외 약대를 졸업하고 국내 약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지난 10년(2014~2023년)간 453명이다. 2010년 4명에 그쳤지만, 2015년 54명, 2020년 103명으로 늘었다. 2021년부터 해외 약대 졸업생은 국내 약대와 달리 ‘예비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약사 시험을 칠 수 있는데도 인기가 줄지 않고 있다. 2022년 합격생은 19명, 작년은 35명이다. 해외 의대 출신 국내 의사는 헝가리가 제일 많고, 해외 약대 출신 약사는 미국과 일본이 많다. 2022년 기준 미국 대학 출신이 10명, 일본이 4명으로 그다음이다.
최근 일본 지방 약대가 한국 학생 유치에 적극적이다. 이번 ‘유학 박람회’에 참여한 일본 약대들은 홋카이도, 도쿠시마, 나가사키, 치바, 이시카와현 등 지방 사립대다. 일본에서도 ‘인구 소멸 위기’ 지역으로 꼽힌다. 박람회에서 만난 일본 약대 교수는 “일본도 저출생과 인구 감소로 지방 사립대는 학생 모집이 어렵다”며 “과거엔 약대가 인기였지만 지방대는 학비를 낼 학생이 줄자 외국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일본 약대 정원은 1만2000여 명으로 한국(1743명)의 7배 수준이다.
한국 유학원 관계자는 “국내에선 의대·약대를 서로 가려고 난리이고, 해외 대학 중에는 학생이 부족한 곳이 적지 않다”며 “해외 의대와 약대 진학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경수 중앙대 약학부 교수는 “해외 약대에 진학한 후 국내 약사 자격을 따는 데까지 10년쯤 걸린다”며 “국내 의대와 공부하는 내용이 다소 다르고, 국내 개업 약국 간의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