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6시 경기 성남 가천대 AI공학관에서 수업을 듣는 반도체 부트캠프 참가 학생들. /가천대학교

지난달 30일 오후 6시 경기 성남의 가천대 AI공학관 715호. 정규 수업이 다 끝난 시간이지만, 학생 20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서민재 교수로부터 ‘디지털 시스템 설계’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이날 강의는 밤 11시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반도체 부트캠프(bootcamp)’ 참가자들이다. 부트캠프는 군대의 ‘신병훈련소’라는 뜻으로, 짧은 시간에 기술을 속성으로 가르치는 방식을 가리킨다. 반도체 부트캠프는 정부가 반도체업계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31년까지 반도체 인재 15만명 양성을 목표로 한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다. 교육부는 지난 6월 가천대 등 10개 대학을 지정해 1년 이내 과정의 부트캠프를 5년간 운영토록 했다. 주로 비(非)전공자들은 취업을 위해 민간 기업의 코딩·IT 관련 부트캠프에 자비로 참여해야 하지만, 정부가 관련 예산을 대고 대학에게 맡긴 게 반도체 부트캠프다. 수업이 무료일 뿐 아니라, 30만~100만원씩 장학금도 준다.

가천대의 경우, 반도체 설계(팹리스) 분야를 집중 교육한다. 대학 인근 판교에 국내 팹리스 기업의 약 50%가 몰려 있는 만큼 기업과 협력하고 취업을 연계하기 좋기 때문이다. 6개월 과정으로, 비전공자도 들을 수 있게 초급부터 중고급 과정까지 있다. 올해 참가자 188명 중 전자공학과 학생이 146명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물리학과, 법학과, 산업경영공학과 등 다양한 전공 학생들도 참여한다. 가천대 측은 “당초 올해 목표였던 150명을 훨씬 넘긴 것”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웨이퍼(반도체 원재료)를 들고 반도체가 국가 발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니 학생의 관심이 커진 것 같다”고 했다.

보통 1학기에 배울 과목을 한 달 만에 끝내는 빡빡한 일정이라 ‘가천고등학교’라는 말까지 나온다. 수업은 철저히 실습 위주다. 학부생이 사용하기 힘든 비싼 설계 소프트웨어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게 최대 강점이다. 학생들은 1~2월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에 나가 실습도 한다. 이종민(전기공학과 4학년)씨는 “원래는 공기업 취업을 생각했는데, 부트캠프를 하면서 설계 쪽으로 진로를 바꿀 생각”이라고 했다. 조성보 부트캠프 사업단장(전자공학부 교수)은 “반도체 설계 중 단순한 것은 6개월 교육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인력난에 시달리는 팹리스 기업들은 바로 데려가 쓸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가천대에서 10여 개 팹리스 기업이 참여한 ‘채용 설명회’가 열렸는데, 현장 면접 후 곧장 취업한 부트캠프 참가자도 나왔다. 교육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데려가는 것이다.

다만 학생들의 취업 눈높이와 산업 수요가 맞지 않은 건 문제로 꼽힌다. 팹리스 기업들은 중소·중견 기업이 많은데, 학생들은 대기업 취업을 원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측은 “내년엔 반도체 부트캠프 운영 대학을 30개 추가로 선정해 지금의 4배 규모로 늘릴 계획”이라면서 “대학과 산업체 협력을 늘릴 방안도 찾아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