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에서 발췌됐다. 그는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넛지’의 저자다. 당시 ‘투 머치 인포메이션’은 한국에서 출판되지 않았다. 유명 작가가 쓴 국내 미소개 책의 일부를 따와 수능 문제로 만든 것이다. 지문을 읽고 주제로 가장 적절한 보기를 고르는 3점짜리 문제였다.
그런데 해당 지문은 입시 업체 메가스터디의 일타 강사가 수능 2개월 전인 재작년 9월 출간한 영어 모의고사 문제집에도 포함돼 있었다. 지문 출처와 발췌한 내용도 같았다. 강사 문제집 지문은 마지막에 한 문장을 추가했고 몇몇 단어만 바꿨을 뿐이다. 지문 중 5개 단어에 밑줄을 친 뒤 맥락상 잘못 쓰인 단어를 고르라는 문제였다. 수능과 문제집 지문이 일치했기 때문에 문제집을 풀어본 학생들은 수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2023학년도 수능 직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게시판에는 영어 23번과 관련한 이의 제기가 100여 건 접수됐었다. “수능 영어 지문이 어떻게 사설 모의고사 지문과 동일할 수 있나”, “지문이 한두 문장도 아니고, 전체가 일치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한 이의 신청자는 “수험생 가운데 사설 문제지를 사지 못하는 학생도 있으며 학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며 “그러나 (해당 모의고사 문제집을) 이미 한번 풀어보고 해설 강의를 들어본 학생들은 지문을 해석하고 분석하지 않아도 문제를 빠르게 풀어낼 수 있다”고 적었다.
평가원 측은 “수능 출제 과정을 보면 출제위원으로 들어온 교수와 교사들이 각자 여러 문제를 제안하고, 이 중 극히 일부의 문제가 엄밀한 평가를 거쳐 최종 출제되는 만큼 특정 지문을 의도적으로 수능에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