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없어질 위기였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 국제고가 현재처럼 유지된다. 대신 전국에서 우수 학생을 선발하던 자사고 10곳은 ‘지역 인재’를 입학 정원의 20% 이상 뽑아야 한다. 저소득층 자녀 등을 선발하는 ‘사회통합 전형’ 비율도 20%를 지켜야 한다. 전국 단위 자사고는 올해 중3 대상으로 신입생을 뽑을 때부터 10명 중 4명을 지역 인재와 사회통합 전형으로 채우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의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지난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가 고교 서열화를 조장하고 학생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며 2019년 이들 학교의 설립 근거인 시행령 조항을 삭제했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2025년 일반고로 바뀔 예정이었다. 반면 현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전부 없애는 것이 ‘획일적 평준화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전국엔 자사고 33곳, 외고 30곳, 국제고 8곳이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 자유를 존중하고 공교육의 다양성·창의성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지역 인재와 사회통합 전형을 통해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단위 자사고는 2025년 고1부터 정원의 최소 20%를 해당 지역 중학생으로 뽑아야 한다. 전국 단위 자사고는 서울 하나고, 인천 하늘고, 울산 현대청운고, 경기 용인외대부고, 강원 민족사관고, 충남 북일고, 전북 상산고, 전남 광양제철고, 경북 김천고, 경북 포항제철고 등 총 10곳이다. 그동안 사교육을 받기 유리한 수도권 학생들이 전국 단위 자사고에 많이 입학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난해 기준 지역 인재 비율이 20%에 못미치는 학교는 현대청운고(0%), 민사고(0.6%), 광양제철고(13.8%), 상산고(19.9%) 등 4곳이다.
전국 단위 자사고는 신입생 20% 이상을 ‘사회통합 전형’으로도 뽑아야 한다. 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 국가보훈 대상자 자녀 등이 대상이다. 정부는 2010년 이전에 설립된 6곳에는 ‘사회통합 20%’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민사고는 2024학년도 신입생 160명 중 사회통합 전형 모집 인원이 0명이었다. 상산고는 신입생 336명 중 20명(6.0%), 현대 청운고는 180명 중 16명(8.9%), 광양제철고는 224명 중 22명(9.8%), 포항제철고는 300명 중 30명(10%)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이들의 입학료와 수업비 등은 교육부가 지원한다.
사회통합 전형 지원자가 적어 신입생이 20% 미만일 경우 미달 정원의 절반은 일반 전형으로 뽑을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비워 놓아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회통합 지원자를 최대한 뽑으라는 취지”라고 했다. 지역 인재 전형은 미달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교육부는 판단한다. 해당 지역 중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자사고 지원을 꺼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도 교육청은 5년마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운영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2025~2029년 성과는 2030년 평가한다. 운영 성과가 나쁘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우려도 적지 않다.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존치하면 우수 학생의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특히 2025년 고1이 되는 학생들은 내신 평가가 현행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완화된다. 1등급이 상위 4%에서 10%까지 늘어난다. 사회·과학 융합 선택 등 일부 과목은 절대평가로 바뀐다. 그동안 상위권 중학생 중에는 “우수 학생들이 경쟁하는 특목고에 진학하면 내신에서 불리하다”며 일반고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내신 부담이 줄어들면 자사고·외고·국제고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특목고 준비를 위해 중학생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가 일반고와 같은 시기에 학생을 모집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중3들은 자사고·외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원하지 않는 일반고에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원에 신중해야 한다. 교육부는 지역의 기업과 대학 등이 협력하는 ‘자율형 공립고 2.0′도 올해 20~30곳 선정해 운영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