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의 사학과 4학년 정모(25)씨는 지난 1월 졸업 학점을 다 채웠는데도 ‘졸업 유예’를 신청했다. 작년부터 기업 수십 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씨는 “기업들이 문과는 잘 안 뽑는 거 같더라”며 “졸업하고 공백이 길면 면접관들이 좋지 않게 볼까 봐 졸업을 미뤘다”고 했다. 정씨는 연휴에도 대학 도서관에서 자기소개서 등 취업 준비를 할 계획이다.

코로나 이후에도 취업난이 심하자 ‘졸업 유예’를 신청하고 대학 5·6학년이 되는 학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가 종로학원과 함께 대학알리미(정보 공시 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작년 1년간 서울 지역 4년제 대학에서 졸업 유예를 신청한 학생은 7025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의 4328명보다 62% 늘어난 것이다. 서울 지역 대졸 예정자 14만명 중 5%에 해당한다. 졸업 유예생은 코로나 첫해인 2020년 7565명으로 급증했고, 2021년 872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22년 7134명으로 다소 줄었으나 작년엔 사회가 일상으로 돌아갔는데도 졸업 유예생은 코로나 시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취업이 더 어려운 문과생이 많다. 작년 서울 지역 대학 졸업 유예자의 63.5%가 인문 계열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보험사에 취직한 박모(29)씨는 “입사 동기가 25명인데 평균 나이가 서른”이라며 “졸업 유예한 경우가 많아서 신입 사원 연령도 높아지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 대학의 졸업 유예생 1만5055명 중 47%가 서울 지역 대학생이었다. 전체 대학생 중 서울의 대학생은 4명 중 1명(24.3%)밖에 안 되는데 졸업 유예생은 절반을 차지했다. 졸업 유예생이 많은 대학은 이화여대(1024명), 연세대(777명), 홍익대(686명), 건국대(625명), 한양대(597명), 국민대(538명), 서강대(502명), 중앙대(427명), 단국대(383명), 서울여대(361명) 순이었다. 서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는 공식적으로 ‘졸업 유예제’를 운영하지 않아 집계에선 빠졌다. 그러나 이 대학들도 1~2학점만 신청하는 식으로 졸업을 늦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에 있는 상위권대 학생일수록 취업 눈높이를 맞추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학 관계자는 “지방대 학생은 졸업을 미룬다고 취업이 더 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서울 소재 대학생보다 졸업 유예자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