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드리블 러닝 시작!”
8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번동중학교 체육관. 오전 7시 30분이 되자 농구 동아리 주장 3학년 김지환(15)군이 큰 목소리로 구령을 넣었다. 그러자 두 줄로 맞춰 선 농구 동아리원들이 일제히 공을 튀기며 농구 코트를 돌기 시작했다. 이후 다리 찢기, 점프 연습 등을 하고선 두 조로 나눠 농구 공격 전술을 연습했다. 이날 연습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25명이 참여했다. 요일을 나눠 아침에 농구하는 동아리원은 총 65명. 이들은 아침마다 50분간 농구 연습을 한 뒤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이 학교는 2019년부터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요일별로 농구·축구·줄넘기를 하는데 전교생 470명 중 100여 명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운동 필요성을 느낀 시·도교육청은 최근 ‘0교시’ 아침 운동을 권장하고 있는데, 이 학교는 이미 5년 전 시작한 것이다.
번동중의 아침 운동은 오경태 체육 교사가 부임하며 시작됐다. 방과 후엔 학생들이 학원에 가니 아침 운동으로 ‘운동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제안했다. 처음엔 아침에 나오는 학생이 10명 정도에 불과했다. 운동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 하는 아이가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운동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오 교사는 “아침에 운동해본 아이들이 몸도 가벼워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소문을 내니까 다른 학생들도 점점 따라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엔 배구와 육상 동아리도 생겼다. 방과 후에 자율적으로 모여 지도교사와 함께 운동한다. 체육 동아리에 하나 이상 가입해서 아침이나 오후에 운동하는 학생이 전교생 4명 중 1명꼴이다.
번동중 교사들은 “아이들이 운동에 많이 참여한 이후 학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 학교는 5년 전만 해도 교사들이 ‘생활지도가 어렵다’고 토로할 만큼 문제 행동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면학 분위기도 안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운동을 시작한 후 매년 수십건씩 발생하던 학교 폭력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정상조 번동중 교감은 “학생들이 운동에 에너지를 발산하다 보니 남을 괴롭히거나 사고를 내는 데 집중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전엔 쉬는 시간마다 학교 안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이 보일 정도였는데, 지난해 흡연으로 처벌받은 학생이 한 명도 없다. 오경태 교사는 “흡연이나 음주를 했다가 걸리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운동 동아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더니 학생들이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이 운동에 흥미를 느낀 건 매일 점심 시간 학년별 ’반 대항 스포츠 리그’가 열린 덕분이다. 모든 학년이 공평하게 운동장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여학생들도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성 축구·농구팀도 생겼다. 2학년 김예랑(14)양은 “점심 리그에 참여하면서 축구를 처음 해봤는데 재미있고, 체력도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번동중 스포츠 동아리 학생 중 약 3분의 1이 여학생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주최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여자 농구∙남녀 육상∙남자 줄넘기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체육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닌데 작년에만 5명이 서울체고로 진학했다. 성공 경험이 쌓이며 자존감이 올라간 학생이 많다고 한다. 3학년 조재민(15)군은 “체육 동아리를 하다 보니 운동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건강관리를 시작한 학생들도 생겼다. 2학년 정주원(14)군은 “몸이 가벼우면 운동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년부터 식단 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마라탕을 끊고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해서 15㎏을 뺐다”고 말했다. 운동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자발적으로 점심시간에 왕복 달리기 등 ‘추가 체력 단련’을 하는 학생도 많다. 서울시교육청은 번동중처럼 수업 전 아침 운동과 다양한 체육 동아리를 운영하는 학교를 늘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