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 등이 법원에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서울고법이 정책 근거를 조목조목 따져보겠다고 결정하며 의정(醫政) 갈등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사실상 백지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각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정부의 비공개 자료들이 공개되며 의료계 반발이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는 의대 교수 등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5월 중순쯤 인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내리면 서울행정법원에 있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부의 의대 증원 관련 절차가 중단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대학들은 지난 1일까지 2025학년도 의대 증원분(최대 1509명)을 반영한 대입 전형 시행 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제출했다. 대교협이 이를 승인하면 각 대학은 다음 달 1일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입시 계획을 발표한다. 수험생은 이를 토대로 9월 초 수시 원서를 낸다. 대부분 대학은 수시로 의대 정원의 60~70%를 뽑는다.
그런데 의대 증원 본안 소송은 판결이 날 때까지 5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적어도 10월까지는 의대 증원이 반영된 시행 계획을 대교협이 승인하지 못한다. 결국 각 대학은 의대 증원이 반영되지 않은 시행 계획을 대교협에 다시 제출해 심사받을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판사는 “법원이 인용하면 일정상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라며 “내년도 의대 증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실상 본판결인 셈”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대법원에 재항고해 다시 판단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이 일정을 아무리 당겨도 최종 판단까지 최소 한 달은 넘게 걸린다”며 “7월 이전에 법원 결정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7월이 지나서 내년도 입시 계획이 나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의대 입시생뿐만 아니라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피해가 가는 ‘대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33조는 ‘6월 대입 전형 시행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정상 시행령 위반 시비에 휘둘릴 소지도 있는 만큼 정부가 재항고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되면 사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는 셈이 된다. 각 대학이 대교협으로부터 의대 증원이 반영된 대입 전형 시행 계획을 최종 승인받고 발표하면, 수험생은 이를 토대로 본격적인 대입 준비에 돌입한다. 한 부장판사는 “의료계 측이 재항고하더라도 절차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돼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법원이 집행정지를 기각해도 의정 갈등은 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법원은 정부에 각종 의대 증원 근거 자료를 내라고 요구하며, ‘의대 배정 심사위원회 회의록’ 등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 위원회는 교육부가 지난 3월 각 대학에 ‘의대 2000명 증원분’을 얼마나 배분할지 정하기 위해 만들었다. 지금껏 정부는 의료계와 국회의 자료 공개 요구를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의사 단체는 “이 회의록이 공개되면 근거 없이 짜고 치는 식으로 의대 배분이 이뤄졌음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법부가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사법 적극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일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의 지나친 개입이 (의대 증원) 정책 추진의 지연과 혼란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며 “현 의대 증원 규모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 수준으로, 재판부는 절차 외에 정책 적절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