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의대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 정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1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의대생이 공부하고 있다./연합뉴스

법원이 의료계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16일 기각했다. 따라서 올해 고3 등이 치를 2025학년도 의대 입시에서 신입생 증원 절차가 정부 계획대로 진행된다. 전국 의대 신입생 정원은 최대 1509명 증원돼 총 4567명을 뽑는 것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 결정이 나오자 서울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그간 불안한 마음으로 소송을 지켜보신 수험생과 학부모들께 고생하셨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힘입어 대학별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과 모집 인원 확정 등 2025학년도 대학 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며 그간 중단됐던 의대 증원 절차는 다시 재개된다. 각 대학은 내년도 의대 증원분을 반영한 대입 전형 시행 계획(모집 요강)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제출한 상황이다. 그러나 법원이 심사를 중단하라고 요청해 아직 심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대교협은 이날부터 입시 계획 심사를 재개해 이달 31일 전까지 확정하고, 각 대학은 이를 수험생에게 공표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7월 초 재외국민 전형, 9월 초 수시 전형 원서 접수가 이뤄진다.

의료계는 법원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할 예정이지만,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법원 판단까지 빨라도 1~2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달 말 2025학년도 대입 계획이 확정돼 수험생에게 공표되면 이를 되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의사단체 법률 대리인단은 이날 “사건의 중대성이 잘 알려졌으므로 대법원이 이달 31일 이전에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중대 사안을 그렇게 성급하게 속전속결식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6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건물 앞을 의료진이 지나고 있다. 이날 서울고법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하면서 이달 말 대입 모집 요강 발표 등 절차가 진행돼 의대 증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뉴스1

이번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대상은 ‘2025~2029학년도 5년간 2000명씩 1만명 증원’이다. 향후 대법원이 이미 입시 계획이 확정·공표돼 집행정지 실익이 없는 2025학년도를 제외한 2026~2029학년도 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절차를 잠시 중단하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각하·기각 결정이 나온 사안인 만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법원의 기각 판정으로 입시 절차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였던 ‘학칙 개정’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러 국립대에서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이 잇따라 부결되거나 개정 절차가 법원 판결 이후로 미뤄져 논란이 됐다. 의대 증원에 대해 교수들이 반발하며 학칙 개정을 못 한 것이다. 현재 의대 정원이 늘어난 대학 32곳 중 17곳이 학칙 개정을 못 했다. 16일에도 경북대 교수평의회 심의에서 의대 증원을 담은 학칙 개정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준 상황에서 대학들이 계속 반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덕수 총리는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에 따른 대학별 학칙 개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대학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라며 “아직 학칙을 개정 중인 대학은 조속히 마무리해달라”고 말했다.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법원까지 의대 증원 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반대하던 교수들 의견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이달 말까지 학칙 개정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총장이 개정된 학칙을 그냥 공표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시 전형 시작 전까지 학칙 개정이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며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만큼 대학 구성원을 설득할 시간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간 ‘의대 증원 규모’가 확정되지 않아 혼란을 겪던 수험생과 학부모들도 걱정을 한시름 더는 모양새다. 만약 법원이 집행정지를 인용해 정부가 대법원에 재항고했을 경우 의대 증원 규모 확정이 7~8월로 미뤄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한양대 입학처장을 지낸 배영찬 화학공학과 명예교수는 “이해관계가 첨예해 구성원마다 입장이 다른 입시 정책의 타당성을 법원이 따지기 시작하면 앞으로 소송이 끝이 없을 것”이라며 “법원 결정이 나왔으니, 이제 수험생들은 늘어나는 의대 정원을 고려해 입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