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찾아간 서울 강서구의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청소년매체환경보호센터. 직원 18명 가운데 10여 명은 각자 눈을 부릅뜬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튜브, 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의 불법 유해 정보를 단속하는 중이다.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한 직원은 “소셜미디어마다 ‘초 단위’로 불법·유해 게시물이 올라온다”며 “(업체 측에) 하루 수천 건 삭제를 요청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같은 양이 쌓인다”고 했다.
이날 한 직원의 모니터에선 불법 도박 ‘바카라’ 게임 실시간 중계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댓글엔 ‘2000배 (수익) 터지는 꿀팁 강의’ ‘슬롯머신으로 돈 벌기’ 등 문구와 도박 사이트로 연결되는 인터넷 주소가 표기돼 있었다. 소셜미디어에 도박과 관련된 간단한 검색어만 입력해도 도박 사이트 주소가 적힌 게시물이 수십 개가 뜨고, 아무런 제한 없이 손쉽게 도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센터는 지난해 총 68만6000건의 불법 정보를 단속했는데 절반 넘는 36만4000건(53%)이 불법 도박 콘텐츠였다. 2021년 3만9000건에서 2년 새 9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최근 3년간 단속한 불법 정보 총 124만건 중 42%가 불법 도박 콘텐츠였다. 성매매(16%), 마약(12.5%), 음란물(10%) 불법 콘텐츠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곳은 2021년부턴 하루 3시간씩 재택근무하는 계약직 점검단 100명을 고용해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불법·유해 콘텐츠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뿐더러 인력이 부족해 ‘틱톡’ 등 일부 플랫폼은 아예 점검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에 범람하는 불법 도박 콘텐츠들이 청소년 도박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경찰청이 청소년들이 도박을 시작하는 경로를 조사했더니 5명 중 1명(18.9%)은 ‘온라인 광고’를 통해 도박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 통해서’(67.6%)에 이어 두 번째다. 여가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체 중∙고교생 중 3.3%가 도박으로 인해 일상 생활이 어려운 ‘도박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최고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불법 대출’ 게시물도 크게 늘었다. 불법 금융 게시물 단속은 2021년 1만건에서 지난해 8만3000건으로 2년 새 8배 이상으로 늘었다. 센터를 총괄하는 조진석 부장은 “‘대리 입금’이라는 홍보 문구로 10만~20만원 소액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만원 이상의 이자를 붙이는 불법 대출”이라고 했다.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늘어나며 여가부는 작년 처음으로 ‘사이버도박 치유 캠프’까지 마련했다. 청소년 20명이 2주간 숙박하며 개인별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난해 청소년을 위한 ‘사이버 도박 치유 캠프’를 담당한 여가부 산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의 심용출 부장은 “청소년들이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중고 거래 사기나 절도 등 범죄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불법 도박 게시물들은 단속을 피해 링크 주소를 수시로 바꾸는 등 수법이 고도화되고 있어 AI를 활용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플랫폼 사업자가 나서 불법·유해 게시물에 대한 필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