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의료계 후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사직 전공의가 이를 악용해 선배 의사들을 속여 수백만원을 챙긴 사실이 알려져 의료계 공분을 사고 있다. 의사들은 해당 사직 전공의를 경찰에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방의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전공의로 근무했던 A씨는 이달 초부터 의료인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서 선배 의사들에게 “사직 전공의인데 경제 사정이 어려워 후원이 필요하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며 후원을 호소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사직 전공의다. 경제적으로 힘드니 돈을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 수십만원을 받아내는 식이다.

그런데 A씨는 삼성서울병원에 근무한 사실이 없다. 이처럼 A씨는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자신을 산부인과 전공의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는 자신을 응급의학과 전공의라고 속이는 수법으로 선배 의사 수십 명에게서 계좌 3곳으로 2주 동안 500만원 이상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를 당한 한 의사는 “자신이 필수과라거나 선배 의사와 같은 과임을 강조해 돈을 더 많이 쉽게 갈취하려 한 것”이라며 “어렵게 지내는 전공의들을 도우려는 선배들 마음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사실에 의사들 충격이 크다”고 했다.

A씨의 이런 행각은 지난 25일 후원 요청 메시지를 받은 한 의사가 수상함을 느끼고 메디스태프에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올리며 들통이 났다. 이에 피해자들이 A씨를 고소하며 경찰 조사가 시작된 상황이다. A씨 측은 본지 통화에서 “A씨가 자신의 신상을 밝히며 후원을 받는 것이 무섭고 창피하다는 이유로 신분을 감췄고 이를 반성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다시 돈을 돌려주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가 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 211개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973명으로, 전체 1만501명의 7.1%에 그쳤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학병원들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규모가 큰 병원은 하루 10억원 이상 적자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병원들은 비용 감축과 대출로 버티고 있다. 간호사와 행정직을 대상으로 무급 휴가 신청을 받는 병원도 적지 않고, 일부 병원은 희망 퇴직 신청도 받고 있다. 의정 갈등이 계속되면 병원들이 줄도산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경영난을 겪는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다음 달부터 7월까지 건강보험 급여비를 미리 지급하기로 했다. 선지급 규모는 지난해 같은 달 급여비의 30% 수준이다. 정부는 또 비상진료체계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예비비 775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이 예산은 종합병원급 수련병원들이 의료진의 당직비와 인력 채용비로 쓰도록 할 예정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공의들의 복귀를 재차 촉구했다. 한 총리는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전공의들이) 이제는 돌아와야 한다. 전공의 여러분은 지금 배우고 일해야 할 때”라며 “환자를 위해, 동료를 위해, 여러분 자신을 위해 바람직한 결단을 내리길 당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