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서울 수색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사토가 깔린 운동장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다. 이 학교처럼 아침마다 맨발 걷기를 하는 학교가 500여 곳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맨발 걷기가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지난 28일 오전 8시 서울 은평구 수색초등학교. 알록달록한 가방을 멘 이 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등교를 했다. 수업 시작 1시간 전이었다.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 가장자리에 가방을 일렬로 놓기 시작했다. 가방 옆에 신발을 벗어두고, 양말도 벗어 신발 안쪽에 찔러 넣은 뒤 까르르 웃으며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아, 따가워.” “시원하다.”

아이들은 맨발로 운동장에 깔린 갈색 마사토(화강암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수학 분수 헷갈려.” “ 뮤직비디오 봤냐?” 친구들끼리 박수 치며 웃고 떠들면서 맨발 걷기를 했다. 엄마와 손을 잡고 걷는 아이도 보였다. 미리 와서 운동장에 뾰족한 조각이 없는지 확인한 교사들도 양말을 벗고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8시 반쯤 되자 맨발 걷기를 하는 아이들이 40~50명으로 불었다. 수색초는 재작년부터 아침 8시부터 50분간 맨발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초·중학교에 ‘맨발 걷기 붐’이 일고 있다. 맨발 걷기를 도입한 학교는 총 500곳 정도라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2022년부터 맨발 걷기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희망하는 초등학교에 수건이나 간식 구입에 쓸 수 있는 연간 운영비 800만원을 주고 있다. 첫해엔 지원 학교가 4곳뿐이었는데, 올해는 24곳으로 늘었다. 올해부터는 지원 대상을 중학교까지 확대했다. 경남교육청에서는 올해 맨발 걷기 시범학교 10곳을 선정해 흙길 조성 비용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27곳이 신청했다.

일선 학교들이 발 벗고 맨발 걷기 도입에 나서는 것은 학생들의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권택환 대구교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발바닥은 다른 신체 부위보다 민감하기 때문에, 맨발로 걸으면 뇌 감각을 자극해 집중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임오경 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맨발로 걸으면 발에 있는 신경 말단 등이 자극되면서 혈액 순환이 촉진된다”며 “발바닥 신경이 자극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줄어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락철 수색초 교장은 “맨발 걷기를 하고 학생들의 신체 활동이 늘어났다”며 “같은 반이 아닌 친구나 선후배를 운동장에서 사귀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2년 전부터 매일 맨발 걷기에 참여한다는 5학년생 이상기(11)군은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면서 걸으니 재밌기도 하고, 걷다 보면 잠이 깨서 수업 시간에 덜 졸리는 점도 좋다”고 했다.

수색초 맨발 걷기는 자율 참여인데도 매일 아침 학생 40~50명이 나온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8시 전부터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있다. 수색초는 매일 맨발 걷기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간식과 ‘인증 배지’를 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학교는 작년 인근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며 전교생이 270명에서 650명으로 늘어났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온 전학생 중 상당수가 맨발 걷기를 하며 친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학교 측은 “아침마다 교사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이 학교 박희숙 상담 교사는 “상담실을 찾아오기 부담스러워하는 학생이 많은데, 같이 맨발 걷기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