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학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입학생이 3명에 불과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원자력공학과 입학생은 단 2명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하면서 원자력 학계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됐지만 학생들의 기피 현상이 여전한 것이다. 대학가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탈원전이 재개돼 학생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두 대학은 입학 후 1학년 때는 전공 없이 공부하다가 2학년 이후 원하는 학과를 선택한다.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는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 전만 해도 매년 입학생이 20명을 웃돌았다. 입학생 수가 2015년 25명, 2016년 22명이었다. 그러나 2017년 9명으로 떨어지고 2019년 4명까지 추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취임 첫해 탈원전 폐기를 선언한 뒤 작년 입학생 수가 8명까지 회복됐지만, 올해 다시 3명으로 떨어졌다. 2학기에 전과 등으로 소폭 늘 수는 있지만, 1학기에 단 3명만 지원한 것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얘기가 많다.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장 장동찬 교수는 “신입생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학과 홍보를 하고 장학금도 확대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유니스트 원자력공학과 입학생 수 역시 탈원전 전인 2015년 22명, 2016년 27명 등 매년 평균 20명을 넘었다. 이 학교는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등으로 한창 주목받을 때인 2011년에는 원자력공학과 입학생 수가 59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원전이 시작되고 입학생 수는 2017년 10명, 2021년 2명까지 추락했다. 작년 입학생 수는 5명으로 소폭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올해 다시 2명으로 떨어졌다.
유니스트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영향을 덜 받고 산업계 수요가 큰 첨단 분야 학과 위주로 학생들이 쏠리는 영향도 크다”고 했다. 실제 유니스트는 올해 전공 선택자 435명 중 80명이 반도체·이차전지와 관련 있는 에너지화학공학과를 선택했다. 카이스트는 올해 전공 선택자 약 800명 중 200명 가까운 학생이 인공지능(AI) 등을 다루는 전산학부(컴퓨터공학·과학)로 쏠렸다고 한다.
일반 대학들의 원자력 관련 학과들은 정원이 정해져 있어 신입생 수는 채우고 있지만 경쟁률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정시 일반 전형 경쟁률은 2019학년도 6.91대1에서 올해 3.9대1로 더 낮아졌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경쟁률 역시 올해 3.68대1로 2019학년도(5.69대1) 보다 낮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곧 ‘원전 인재 풀’이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 원전 살리기에 나섰지만 학생들을 돌아오게 할 정도로 메시지가 뚜렷하지는 않다”며 “곧 원자력 석·박사, 연구진, 교수 등이 차례로 사라지고, 결국 미국 등 다른 나라처럼 외국 인재 수입에 의존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했다. 단국대 원자력융합공학과를 나온 한 졸업생은 “실제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원전 산업 붐이 다시 일면서 전망이 불투명하고 급여도 적은 한국에 있을 바에 외국으로 나갈 준비하는 전공자들이 주변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이 정권에 따라 요동치지 않게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니스트 원자력공학과장 방인철 교수는 “원자력 공부가 적성에 맞는 학생이 있어도 학부모들이 지난 정부 탈원전 상황을 알기 때문에 반대해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치권이 합의해 장기 에너지 정책 로드맵을 만들어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