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내년에 학교에 도입될 ‘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한창 개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학부모들이 국회 청원까지 내면서 반발하고 나섰다. “아이들 문해력이 떨어지고 스마트 기기 중독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도입을 유보해 달라는 것이다. 반면 교육부는 “AI 교과서로 오히려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져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러스트=박상훈

교육부는 내년에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영어 과목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 외국 일부 도시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 곳은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도입하는 건 한국이 최초다.

그러나 도입 한 학기를 앞두고 최근 학부모 반발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5월 2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것이다. 해당 청원은 한 달 만인 지난달 27일 동의 수 5만6000명으로 마감됐다. 국민동의청원은 동의수가 5만 명을 넘으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가 심사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부는 국회에 대책을 보고해야 한다.

그래픽=박상훈

교육부가 내년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이유는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AI가 학생의 학습 활동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수준에 맞는 문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종이책을 병행한다.

본인을 ‘학부모’라고 밝힌 글쓴이는 “학부모들은 자녀의 과도한 스마트 기기 사용으로 이전에 없던 가정 불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며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스마트 기기와 위험한 동거를 지속하고 있다”며 “하루 일과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에서조차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늦었지만 AI 교과서를 도입하는 게 교육적으로 맞는지 살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달 29일 교육계 전문가들 모임인 한국교육네트워크는 ‘AI 디지털 교과서, 독인가 약인가’ 포럼을 열었다.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학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녀의 문해력 저하다. 6·8세 자녀를 둔 서선미(36)씨는 “글 읽는 능력을 길러주려 가정에서는 스마트 기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하는데 학교는 물론이고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에게 태블릿을 나눠주고 교육하더라”며 “학교에서까지 태블릿을 사용하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회원수 300만명인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지난 한 달간 디지털 교과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글이 50개 가까이 올라왔다.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중독’을 부추길 것이란 걱정도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한국 청소년(만 10~19세) 10명 중 4명(40.1%)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었다.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기기로 대체하는 정책에 대해 해외 국가들의 선택도 갈리고 있다. 폴란드는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작년 9월부터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도 2020년 모든 초등·중학교 학생들에게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를 지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스웨덴은 일찍부터 초·중·고교에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수업을 의무화했고 2017년 이를 유치원까지 확대했다. 그런데 작년 8월 유치원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면서 아이들의 읽기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디지털 교과서의 핵심은 학생의 학습 특성 데이터를 수집해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라며 “저출생 시대엔 디지털 교과서로 맞춤 교육을 해서 한 학생도 뒤처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는 “디지털 교과서는 정보를 빠르게 제공할 순 있지만 종이책과 달리 학생 스스로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은 길러주지 못한다”며 “적어도 초·중·고교 시기엔 종이책을 읽게 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난감해하는 분위기지만 ‘도입 유보’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미 AI 업체와 출판사가 진행해온 AI 교과서 개발이 막바지 단계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교과서 실물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부정적인 면만 부각된 것 같다”며 “AI 교과서는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게 해서 전반적인 학업 능력을 끌어올릴 필수 도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