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북 포항 여남동 한국해양마이스터고등학교 항해실습실에서 알비아누스 랜디(맨 앞)군을 포함한 인도네시아 학생 4명과 한국 학생 2명이 함께 원양어선 운항 실습을 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1일 오후 경북 포항 영일만 근처에 있는 한국해양마이스터고. 항해실습실의 선박 시뮬레이터 앞에 인도네시아 출신 학생이 서있었다. 교사가 “북동쪽, 10노트(knot)로 선박 속력 조정하세요”라고 지시하자, 수화기를 든 스마트운항과 1학년생 알비아누스 랜디(17)군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시뮬레이터를 조작했다. 교사가 항해사, 랜디군은 기관사 역할을 맡은 것이다. 실습실 한쪽 해도(海圖)실에도 학생이 여럿 있었는데 외국인도 한 명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인 누노 고메즈(16)군이 친구들과 삼각자와 컴퍼스를 들고 포항 영일만에서 구룡포항까지 항로를 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항해사와 기관사 등 선박 직원을 키우는 이 학교는 올해 인도네시아 학생 4명을 선발했다. 외국인을 뽑기는 처음이다. 유학생들은 학교에서 항해와 선박 관련 지식을 배워서 해기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 후 한국 원양어업 회사에 취업하는 게 목표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 원양어선에서 직접 참치를 잡는 갑판 선원이 아니라 선박을 이끄는 항해사, 기관사가 될 수 있다.

이 학교가 인도네시아인들을 뽑은 건 한국 학생만으로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946년 설립한 이 학교는 전문계고(옛 상고·공고)인 포항해양과학고에서 지난해 마이스터고로 전환했다. 80년대까지는 경쟁률이 10대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인구도 줄고 힘든 원양어선 일을 한국인이 기피하자 지원자가 점차 줄었다. 마이스터고 전환 전까진 6년 연속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전문계고보다 정부 지원금이 많고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마이스터고 전환을 결정했다. 전환 후 입학 경쟁률은 1.5대1. 결국 지금 같은 인구 감소 속도라면 10년 뒤엔 마이스터고도 학생 모집이 안 되겠다 싶어 유학생 유치를 검토한 것이다.

연간 유학생 학비(기숙사비 포함) 2000만원은 경북교육청이 댄다. 참치 원양어업을 하는 기업 동원도 예산을 보태기로 했다. 이 학교에선 매년 10명 정도 동원에 취업하는데, 동원도 갈수록 국내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유학생 유치 아이디어에 동감한 것이다. 동원은 유학생 1인당 장학금 500만원을 지급한다.

조준섭 해양마이스터고 교사는 “국내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 중 인도네시아 국적이 40% 이상”이라며 “언어와 문화 습득이 빠른 고등학생 때부터 유학생을 뽑아 원양 어선 간부로 교육하면 한국 직원들과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국 학생들도 외국 문화를 접하면서 외국인 선원들과 지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학교가 작년 6월부터 인도네시아에서 홍보하고 학생을 모집했는데, 4명 선발에 150명이 몰렸다. 한국 회사에 취업하면 인도네시아에서 일할 때보다 10배 정도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유학생 랜디군은 “졸업하고 부산에서 살면서 한국 회사 항해사로 일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한국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오전엔 항해 전공 수업과 국어·영어·수학 등 교과목을 듣고, 오후엔 인도네시아 출신 한국어 강사에게 한국어를 배운다.

그래픽=양진경

경북교육청은 올해 해양마이스터고를 포함해 직업계고 8곳에 베트남·태국·몽골·인도네시아 학생 48명을 유치했다. 내년엔 20명 늘려 68명을 뽑을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 현지에 ‘한국어 집중 교육 과정’도 만든다.

다른 지역에서도 고교 때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부산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부산시 최초로 내년에 중국인 유학생 30~45명을 유치하기로 했다. 부산시의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정원 채우기가 힘들어지자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결심한 것이다. 미술·무용·음악 등 분야에서 국제 콩쿠르에 입상할 정도로 실력을 키워 국내 대학에 진학시키는 게 목표다. 브니엘예고 측은 “예술 관련 유학은 주로 미국, 유럽으로 가는데, 최근 한국에서도 많은 예술가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한국 유학에 관심 있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교육청은 2026년 개교하는 ‘KPOP 특성화고’도 신입생 80명 중 절반을 유학생으로 채우기로 했다. 경북 김천고는 올해 베트남∙캄보디아 유학생 8명을 데려와 국내 대학 진학을 목표로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