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2009년 7월부터 자율형 사립고로 운영해온 이대부고는 내년에 일반고로 전환할 예정이다. /장련성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인 이화여대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이대부고)가 내년 일반고로 전환할 예정이다. 2009년 7월 자사고로 지정된 지 15년 만에 스스로 자사고 운영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모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내년 모든 고등학교에 고교 학점제가 도입돼 자사고만의 강점이 줄어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8일 서울교육청은 이대부고가 지난 5월 30일 자사고 취소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서울교육청 측은 “자율 학교 지정 심의 위원회에서 일반고 전환을 허가했고, 교육부 최종 동의 절차만 남은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서울엔 이대부고를 포함해 자사고가 17곳 있다. 이대부고가 일반고로 전환하면 서울에서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 11번째 사례가 된다.

교육계에선 이대부고의 일반고 전환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대부고는 2019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사고 8곳을 일반고로 강제 전환하려고 하자 다른 학교들과 함께 행정소송까지 내 승소하며 끝까지 자사고 지위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을 뒤집고 자사고를 계속 유지하기로 올해 초 결정했다.

그래픽=정인성

그런 이대부고가 스스로 자사고 지위를 내려놓자 “학령인구 감소를 못 피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녀공학으로 신입생 정원이 420명인 이대부고는 입학 충원율이 2022학년도(87%), 2023학년도(85%), 2024학년도(79%) 등으로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일반고와 달리 자사고는 학생들이 내는 학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신입생을 못 채우면 그만큼 손해다. 이대부고의 연간 학비는 1인당 600만~700만원이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 학생 모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교 재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사는 “교육청들이 일반고 지원금을 늘리면서 일반고 운영비가 자사고 수입을 앞지른 지 오래됐다”며 “재단 입장에서는 굳이 미래 수익성이 불투명한 자사고를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자사고는 지원한 학생 중에 선발해야 하지만, 일반고는 교육청이 학생을 자동 배정하기 때문에 신입생 미달 걱정이 덜하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 전형 비율이 늘어난 것도 자사고 인기가 떨어진 이유다. 수시 전형에선 고교 내신 성적이 가장 중요한데, 상대적으로 우수 학생들이 모인 자사고에선 성적 경쟁이 일반고보다 더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 자사고는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이 풍부해 일반고보다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최근 이런 장점도 희미해졌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사건이 드러난 후 수시 전형에서 자기소개서도 금지됐고,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에 대한 평가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내신 성적 받기 어려운 자사고에 갈 바에야 일반고 가겠다”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내년 전면 실시되는 ‘고교 학점제’ 영향도 있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듣는 제도로, 내년 전국 모든 고등학교 1학년에 적용된다. 자사고의 가장 큰 강점은 일반고에 비해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점이다. 그런데 일반고 학생들도 다양한 교과목을 골라 들을 수 있게 되면 자사고만의 차별성이 사라진다.

이대부고는 일반고로 전환하는 동시에 중·고등학교 6년 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이음학교’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대부고와 이대부중은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고 둘 다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있다. 중·고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학생들은 예술, 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다. 학교는 급식 등을 함께 운영해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대부고 관계자는 “이대부중 학생이 이대부고로 자연스럽게 진학하며 학생 수 유지도 쉬워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