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인 이화여대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이대부고)는 최근 자사고 운영을 스스로 포기하고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한때 교육 당국이 일반고로 강제 전환하려고 하자 행정소송까지 내 승소했던 이대부고는 2024학년도 입학 경쟁률이 0.79대1에 그쳐 학생 정원을 다 채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뿌리가 같은 서울 중구에 있는 자사고인 이화여고는 입학 경쟁률이 1.48대1로 서울 지역 자사고(하나고 제외) 중 가장 높다.
10일 교육계에서는 각 학교 재단의 운영 방식 차이에서 두 학교의 길이 엇갈렸다고 보고 있다. 이대부고는 재단법인 ‘이화학당’ 소유다. 이 재단은 이화여대, 이대부고·중·초·유치원, 이대병설미디어고, 이대병설영여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고는 이화여자외고, 팔렬중·고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이화학원’ 소속이다.
두 재단 모두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 여사가 서울 중구 정동에 세운 이화학당이 모체(母體)다. 그러나 1935년 이화여대(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가 정동에서 신촌으로 이전하며 공간적으로 분리됐다. 1943년 재단법인도 이화여대를 운영하는 ‘이화학당’과 이화여고를 운영하는 ‘이화학원’으로 완전히 나뉘었고, 이후 아예 별도의 재단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세청 법인 공시에 따르면, ‘이화학당’ 순자산 규모는 2월 기준 1조3911억원으로 ‘이화학원’(1732억원)에 비해 훨씬 크다. 하지만 이화여대가 작년 영업이익 기준 약 407억원 손실을 보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재단 재정이 나빠지고 있다.
10년 넘게 이화여대가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한 것이 재정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2012년부터 등록금을 올린 대학에 재정 지원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등록금 동결을 사실상 강제해왔다. 이화여대는 재정 적자를 타개하려 2016년 고졸 직장인을 대상으로 패션 등 과목을 가르치는 미래라이프대(평생교육단과대)를 설립하려 했지만, 학생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의대 증원’으로 전공의 파업 등이 이어져 이대목동병원 등 이대의료원 산하 병원들 적자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령인구 감소로 앞으로 학생 모집이 더 어려워질 이대부고를 자사고 형태로 계속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사고는 일반고와 달리 교육청으로부터 지원금도 받지 못한다. 이대부고가 내년 일반고로 전환되면 정부로부터 ‘일반고 전환 지원금’ 25억원을 받고, 앞으로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 등도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는다.
반면 이화여고는 앞으로도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교육’이라는 건학 이념을 지키려면 자사고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사업 규모가 큰 이화학당과 달리 이화학원은 중등교육 사업에만 집중해 재정 변동이 크지 않고 동창회 기부 규모도 커 안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화여고 졸업생은 약 6만5000명으로, 작년 동창 등이 낸 기부금만 6억원에 달한다.
입시 업계에서는 두 학교의 가장 큰 차이로 ‘역사’를 꼽았다. 이화여고가 1886년 설립된 한국 최초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잇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큰 데다 여전히 동창 사회 교류가 활발하다. 이대부고는 1958년에 설립됐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화여고가 전통이 있을 뿐 아니라 최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것도 인기의 한 이유”라고 했다. 서울 지역에 있는 자사고 17곳 중 여고는 이화여고와 서초구에 있는 세화여고가 유일하다 보니 여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