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엑스(X·옛 트위터) 계정 ‘퀸아카이브’를 쓰고 있는 A씨다.

그래픽=김하경

구독자 12만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 ‘길티아카이브’로 더 잘 알려져 있는 A씨는 지난 24일 한 시민으로부터 딥페이크를 활용한 음란물이 텔레그램에서 판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을 자신의 엑스 계정에 공개해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를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추가 제보를 받는 데 앞장섰다. 이후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피해 학생들 학교 목록’이 온라인상에서 공유됐고, 학생·교사는 물론 여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통령까지 나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8일 본지와 만난 A씨는 “1분에 8개씩 제보가 쏟아졌다. 새벽에도 알림이 꺼지질 않았다”며 “피해 학생들 얘기를 듣고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A씨는 본인의 신상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본인이 나선 이유는.

“지난 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구 ‘겹지방(‘지인능욕방’과 유사)’ 글이 처음 올라왔다. 그게 제게도 들어왔고, 엑스에 관련 게시물을 썼다. 그걸 본 한 시민이 10대 학생들이 피해자인 텔레그램 딥페이크방을 제보했다. 알게 된 이상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그램 범죄 특성상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수사가 어렵다. 가해자들 신상을 역으로 추적하기 위해 텔레그램 방에 잠입했다. 직접 보니 텔레그램 내 딥페이크 성범죄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전국 단위였다. 공론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픽=김하경

–어떻게 공론화했나.

“25일 오후 1시 엑스 계정 ‘퀸아카이브’를 통해 딥페이크 성범죄가 대학교뿐 아니라 대구시내 중고교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동시에 대구 사는 여학생들은 다 셀카를 내리라고 글을 썼다. 당시만 해도 딥페이크 성범죄는 ‘인하대 사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겹지방’에 나와 있는 17개 학교 목록을 캡처해 올렸다. 중학교 10곳, 고등학교 7곳이었다.”

–반응이 어땠나.

“그날 오후 2시 30분부터 내 글을 본 사람들에게서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대구의 딥페이크 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네 번째로 만들어진 방이라고 하더라. 이후 서울·수원·대전·의정부·부천 등에서도 비슷한 방을 찾아냈다. 방들을 폭로하는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1932명이 모여 있는 한 ‘능욕방’엔 하위 방으로 ‘사촌방’ ‘엄마방’ ‘지인방’ ‘누나방’ ‘여동생방’ 등이 나뉘어져 있었다. ‘여군’을 대상으로 한 방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런 곳에선 어떤 글과 사진이 올라오는가.

“예를 들어 ‘여동생방’에선 한 남성이 자고 있는 자기 여동생 치마를 걷어 허벅지를 만지는 사진을 찍어서 올리며 “오늘은 수면제를 먹이는 데 실패했다. 내일은 성공하겠다”고 썼더라. 이를 본 사람들은 “용기 있다” “부럽다”는 반응을 달았다. 또 다른 방에선 피해 여중생 사진, 이름, 학교, 집 주소, 전화번호 등 신상 정보와 함께 “순수해서 협박해 X먹기 좋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방에 잠입해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속이 너무 역했다. 여성들 누드 사진으로 가득했다. 주요 신체 부위의 향연이었다. 대체 다른 사람 벗은 몸에 왜 그렇게 관심 갖는지. ‘지인 능욕’ ‘가족 능욕’ 등 방이 너무 많았다. ‘링공방(링크 공유방)’에 들어가니 링크가 나왔다. 그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또 다른 링크가 나타났다. 끝없이 이어졌다. 혼자만으론 이 많은 가해자를 전부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엑스에 새 게시물을 올려 함께 증거를 모을 사람들을 모집했다. 저를 포함해 11명의 시민이 모였다. 가해자가 어느 정도 특정되면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고, 엑스에 공론화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제보가 왔다. DM(다이렉트 메시지)이 1분에 8개씩 쏟아졌다. 새벽에도 알림이 꺼지질 않았다. 계속 상황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피해 학생들 얘기를 듣고, 트라우마를 함께 겪었다. 정말이지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텔레그램을 다룰 줄 몰라 애를 많이 먹었다. 겨우 들어간 방에서 화면 캡처를 하려다 ‘강퇴(강제 탈퇴)’ 당하기도 했다. 캡처한 사실이 방 주인에게 전달되는지 몰랐다. 배우면서 추적하고 있다.”

첫날 A씨가 일반에 공개해 없어진 방만 19개다. 방 하나에 참가자가 최대 2만명에 달했다. A씨 계정에 연속해서 제보 글이 올라오자 다음날인 25일 오후 9시부턴 ‘피해 지역·학교 명단’을 따로 정리해 올리는 계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우는.

“가장 끔찍했던 건 한 피해 학생의 능욕방을 따로 만든 경우였다. 거기에 그 학생 신상 정보를 다 볼 수 있게 올려놓고, 딥페이크 영상을 서로 돌려봤다. 참가자만 1000명이 넘었다. 그들은 피해 학생에게 ‘너 딥페이크 범죄 당했다’며 연락했다. 괴로워하는 피해 학생의 반응을 공유하면서 또 즐거워했다. 피해 학생의 신상 정보를 인터넷 게시판에 박제해버리는 사례도 있었다.”

–남성이 피해자인 딥페이크 성범죄 방은 없나.

“모르겠다. 남성 대상 방은 아직 못 봤다. 전부 여성이었다. 기본적으로 텔레그램에 돌아다니는 딥페이크 프로그램은 여성의 몸을 합성하게 돼 있는 걸로 안다.”

–이렇게 많은 이른바 ‘지인능욕방’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인셀(incel·이성 교제나 결혼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남성들) 문화가 한몫한다고 본다. 남성들 사이엔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여성을 능욕하며 희열을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 이게 범죄라는 인식도 부족한 것 같다. 딥페이크 범죄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한다. 내 얼굴로 된 영상과 사진이 떠돌아다닌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 신상이, 심하면 집 주소까지 퍼진다. 절대 가벼이 봐선 안 될 문제다.”

–피해 학생들에게선 연락이 왔나.

“정말 많이 받았다. 모두 “언니 고맙다”고 했다. 이 계정을 운영한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런 응원 메시지 덕에 힘이 났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해자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죄를 지으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초범’ ‘심신미약’ 등 온갖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 가해자들은 재수 없게 벌 받았다며 앞으로 안 걸릴 방법을 찾는다. 법원의 선심성 선처가 범죄자의 재사회화가 아닌 잘못된 방향의 ‘학습’을 돕는 거다. 사람들은 언젠간 자기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진짜 모른다.”

☞딥페이크(Deep Fake)

인공지능(AI) 심층 학습을 뜻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를 합한 단어로, AI로 만든 가짜 콘텐츠를 말한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내려받은 얼굴 사진에 음란물의 나체 사진을 합성한 성범죄물을 손쉽게 만들어주는 ‘딥페이크 애플리케이션’까지 최근 대중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