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학생들이 쓰는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 교과서 9종은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현 교과서에 비해 중립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여전히 논란이 될 만한 서술이 곳곳에 존재했다. 교과서 내용의 뼈대가 되는 ‘교육과정’이나 ‘검정 기준’에 적시하지 않은 내용은 집필진이 자유롭게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 본지가 교과서 9종을 분석한 결과, 8종(동아출판·리베르스쿨·미래엔·비상교육·씨마스·지학사·천재교과서·해냄에듀)이 1930년대 독립 운동을 서술하면서 김일성이 활동했던 중국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을 수록했다. 대부분 김일성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셈이다. 동아출판, 리베르스쿨, 비상교육, 천재교과서는 북한이 김일성의 최대 항일 업적이라고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까지 서술했으며, 천재교과서는 관련 자료 설명에서 ‘김일성’의 이름까지 넣었다.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Ⅲ) 2항은 ‘유엔이 (선거를) 감시하고 협의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지역에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 정부(대한민국)가 수립됐으며, 이것은 한반도(원문은 Korea)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교과서 9종 중 7종(리베르·미래엔·비상교육·씨마스·지학사·천재교과서·해냄에듀)은 이 내용을 서술하면서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합법 정부’라고만 설명했다. 대한민국이 당시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승만은 1946년 6월 정읍에서 ‘정읍 발언’(정읍 선언)이라 알려진 연설을 했다.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나 위원회를 조직한 뒤 38선 이북에서 소련을 내쫓고 통일을 도모하자는 선언이다. 한국학력평가원을 제외한 교과서 8종은 이를 소개하면서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고 서술해 한반도 분단 고착화의 원인이 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들은 ‘정읍 발언’보다 앞선 1946년 2월 북한에 사실상의 정부인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먼저 수립됐다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해냄에듀 교과서는 ‘남과 북, 독재 체제를 구축하다’를 17주제 제목으로 삼아 1950년대 남북한의 정치체제가 같은 수준의 독재 체제였다는 오해를 사게 했다.
새 교과서는 기존보다 근현대사 비중이 10%포인트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근현대사(개항 이후) 비중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주제 여섯 중 넷(67%)이 근현대사를 다룬다. 소주제는 26개 중 17개(65%)가 근현대사다.
근현대사 비중은 노무현 정부 전까지 33%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는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한다며 ‘근현대사’를 선택 과목으로 개설해 교과서를 아예 따로 만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근현대사가 다시 국사에 통합되고 분량도 50%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 다시 비중이 77%로 늘었다. 교과서의 근현대사 비중이 너무 높아 “학생들이 고조선부터 조선 시대까지 수천 년 역사를 제대로 못 배운다”는 의견이 많다.